"영업 안한 여직원은 승진 탈락"…간접 성차별에 '시정명령'

입력 2024-01-23 11:59
수정 2024-01-23 12:12

중앙노동위원회가 여성 직원들이 충족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승진 심사 기준을 만들어 간접차별을 한 기업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지난해 5월 '고용상 성차별 시정 제도'가 도입된 이후 두 번째 시정명령이다.

중앙노동위는 직원 1000명 규모의 기계 제조·판매업체 A사에게 "승진 심사를 다시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여직원들이 충족할 수 없는 승진 기준 적용해 여성 승진 대상자 2명을 모두 탈락시켰다는 이유다.

A사의 국내사업본부는 영업 활동을 하는 영업관리직과 영업 활동을 하지 않는 영업지원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제는 영업관리직은 전원 남성, 영업지원직은 전원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상반기 과장급 승진심사에서는 영업 활동을 하지 않는 영업 지원직이 충족할 수 없는 '매출점유율' '채권정유율' 등을 승진기준으로 사용했다.

결국 승진 대상인 남성 직원 4명 중에서는 3명이 승진했지만, 여성은 2명 모두 탈락했다. 승진에서 탈락한 여성들은 3년간 인사평가 평균이 남성 직원보다 동일하거나 더 높았고, 직급 근무 기간도 승진한 남직원보다 더 길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여직원들은 지방노동위에 성차별 시정명령을 신청했다.

조사 과정에서 사업주는 “입직 경로의 차이, 업무 확장성의 차이 등으로 (여직원들이) 고급관리자로 가는 역량이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초심 지방노동위는 영업관리직과 영업지원직 간 직무상 차이에 의한 승진 결정으로 보고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노위는 "여직원에 불리한 처우를 정당화할 사유가 없다"며 승진 심사를 다시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통계적 결과와 승진심사 시 실제 적용된 기준, 승진 이후의 역할 및 현재 과장급 이상 승진자의 업무 등을 모두 고려하면 성별에 따른 간접차별이 인정된다는 지적이다.

중노위는 "이 회사는 2022년 6월 기준으로 남성 비율이 88.1%로 남성이 월등히 많기는 하다"면서도 "하지만 과장급 이상에서는 남성이 96.7%로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그밖에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이 사건 회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한 53명 중 여성은 3명에 불과한 점, 2023년 상반기 A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한 46명 중 여성은 전혀 없는 점, 국내사업본부에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과장으로 승진한 12명 중 여성은 한 명도 없는 점도 시정명령의 근거가 됐다.

중노위는 또 해당 여성 직원 중 1인과 비슷한 시기인 1999년과 2000년에 동일하게 고졸로 입사한 남성 직원들은 모두 승진한 바 있으며, 과장급 승진시 반드시 관리자로서의 보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중노위는 이번 시정명령에 대해 "외견상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했어도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여성이 현저히 적고 △그에 따라 여성은 불리한 결과에 처하며 △그 기준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한 경우라면 성차별로 인정한 사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차별에 대한 시정명령을 하였다는 부분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상 성차별 시정 제도는 근로자가 △고용상 성차별을 당한 경우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근로자 등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근로자 등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에 13개 지방노동위원회에 직접 시정신청을 하는 제도다.

시정명령이 확정되면 사업장 관할 지방고용노동청은 사업주에게 시정명령의 이행상황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사업주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은 경우 1억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김태기 중노위원장은 "이번 노동위의 판정이 노동시장에 활력을 주고, 질적 수준을 높이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