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과연 한국은 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나라인가? 앞으로 더 잘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나라의 기준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한 국가에서 개인이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의료 시스템, 근로자 임금, 국민의 재산 수준, 교육 제도, 은퇴 후 연금 시스템이 중요하다. 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한국의 현 위치를 알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가늠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본다.
우선 영아사망률은 2021년 한국이 1000명당 2.5명이고 주요 5개국(G5·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평균은 3.4명이다. 1960년 한국의 영아사망률이 79.5명이고 G5 평균이 25.7명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은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국제보건기구는 국가별 의료 시스템 평가에서도 2021년 한국을 캐나다 아이슬란드에 이어 3위로 책정했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꽤 만족스러워 보인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0위권이고 1인당 GDP도 일본과 엇비슷한 높은 수준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GDP보다 임금이 생활에 더 직접적 영향을 미치니 이를 따로 볼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근로자 평균임금은 2022년 4만9000달러(구매력을 고려한 환율)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보다 18%가량 높고, 프랑스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다. 더구나 지난 30년간 한국의 임금 상승률은 다른 나라의 두 배 이상 높으니 이런 추세라면 몇 년 후에는 영국과 독일 수준도 뛰어넘을 것 같다.
스위스 UBS는 매년 국가별 성인 한 명당 재산 수준을 추정해 발표한다. 2022년 한국은 23만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보다 높고 독일보다 약간 낮은 수치다. 임금이 늘면서 국민의 재산도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고무적 지표다.
한국의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동의하는 부분도 많지만, 만약 한국의 교육이 저급했다면 위에 언급한 발전이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교육과정의 정점에 있는 대학에 관해 언급하자면 한국은 25~64세 인구의 대학 이수 비율이 45%로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다. 25~34세 인구 기준(68%)으로는 세계 1위다. 대학 교육을 받고자 하는 사람도 많고 이들의 요구가 대체로 충족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만족할 만한 성과고 인적 자본이 축적됐음을 시사한다.
연금 시스템은 연금을 평생 평균임금으로 나눈 연금 대체율로 평가하곤 한다. OECD에 의하면 2022년 한국은 남성 기준 31.2%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과 비슷한 수치지만 OECD 평균 50.7%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아직 연금 수준은 더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한국은 지난 70년간 경제적으로 정말 잘해왔고 살기 좋은 나라가 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미래가 불안하다고 자녀를 포기하는 부부가 많다. 불행하게도 자살률은 G5보다 훨씬 높다. 1등을 한 성적을 까맣게 잊고 안절부절못하는 수험생 같은 모습이다.
물론 한국이 직면한 도전 과제도 많다. 저출산·고령화, 성장률 정체 가능성, 대결 구도로 가는 세계 경제 환경, 가계 부채, 높은 사교육비 등이 주요 과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최빈국의 위치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난 세기의 처절한 과제, 대외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사태를 극복해야 한다는 1998년의 절박한 과제에 비한다면 난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지난 70년간의 경제 문제를 해결한 한국인의 집단적 문제 해결 능력과 상승 욕구는 아직도 살아 있다. 현재 한국의 인적·물적 자원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위에서 언급한 도전 과제 대부분은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민 확대, 가족 관련 정부지출 증가, 생산성 증대, 신기술 개발, 주택 공급 확대, 공교육 효율화 등 실현 가능한 해결책도 있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나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한다. 한국인들이 앞으로의 경제 문제를 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지레 겁먹고 비관으로 흘려야 할 이유는 못 찾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