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은 매일 조간신문에 보도된 경찰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 내부망인 ‘폴넷’에 오전 8시 즈음 올린다. 전국 14만명의 경찰 중 일부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 이를 통해 사회 동향을 파악하고, 업무에 참고할 조직 이슈를 살핀다.
그런데 22일 경찰본청과 서울경찰청 스크랩에는 본지가 보도한 A27면 ‘그때 1억 줬으면 총경 승진했을까요’ 기사가 빠져 있었다. ‘경찰의 꽃’이라 불리는 총경 계급 승진자 및 승진 브로커들이 경찰 인사에 얼마나 개입하려 하는지를 고발하는 기사였다.
‘왜 스크랩에 빠졌느냐’고 묻자 경찰 관계자는 “전날 해당 기사가 온라인에 노출됐을 때 웹 링크를 공유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뇌부에 별도로 보고됐다”면서도 “민감한 내용은 다른 방식으로 내부에 전파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해당 기사를 굳이 스크랩에서 뺀 이유는 자명하다. 조직의 치부를 적극적으로 알리기가 껄끄러워서다.
그동안 경찰은 브로커가 연루된 인사청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부 경찰의 일탈 정도로 치부하며 쉬쉬하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광주·전남 일대에서 활동한 경찰 승진 브로커 성모씨(62)에 대한 수사 기사는 지난해 8월부터 지역지와 중앙언론에서 보도됐다. 성씨가 경찰 고위직과의 친분을 앞세워 의뢰인들로부터 금전을 받고 수사 무마, 인사청탁 등을 일삼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수개월 동안 경찰 지도부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경찰은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한 이후에 연루된 치안감을 직위해제했다.
본지의 경찰 승진 인사 실태 보도는 지난 8일 총경 인사 전부터 취재하던 내용이다. 취재에 응한 한 경찰은 “브로커를 만나 돈을 요구받았고, 조직을 위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제보했다”고 털어놨다. 이들 증언에 따르면 브로커들은 ‘경찰 수뇌부 A는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수뇌부 B가 ××에서 근무했을 때 연을 맺었다’ ‘현 정권의 실세 국회의원과 집안사람이다’ 등 다양한 인맥을 과시하며 승진이 절실한 경찰의 취약점을 파고들었다. 취재에 응한 경찰을 보호하기 위해 기사에 담지 못한 유력자와 브로커들의 활약상은 영화보다 극적이었다.
브로커가 활개 치는 이유는 승진이 안 되면 강제 퇴직하는 ‘계급정년’ 제도와 수만 명의 지방 경찰 인사를 서울에서 관장하는 시스템 등 복합적이다. 만약 성씨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경찰이 전면적 실태 점검에 나서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경찰 지도부는 만연한 인사청탁 문화와 이를 부추기는 인사 제도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
이와 관련 경찰청은 “경찰공무원 승진 심사는 근무성적 및 경력평정, 승진심사위원회, 승진후보자 임용 순으로 이뤄지고, 객관성과 다양한 공정성 확보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어 브로커가 경찰 인사에 개입할 여지가 없으며, 브로커 연루 의혹 치안감에 대한 직위해제는 관련 규정에 따라 적절하게 조치된 것”이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