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화물을 다 운송해 놓으면 뭐 합니까.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9.5t짜리 트럭을 모는 임모씨(45)는 “작년 운송한 요금 1400만원을 아직 못 받았다”며 분개했다. A화물중개 플랫폼을 통해 8개 중개회사(주선사)에서 받은 화물이다. 몇몇 업체는 이미 파산해 돌려받을 길이 막혔다.
물건을 보내고 싶은 화주(貨主)와 화물차를 가지고 물건을 날라주는 차주 간에 일감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운송비 먹튀’의 현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화물을 보내는 쪽에선 분명히 값을 치르는데도 일감을 중개하는 주선업체들이 플랫폼에서 차주에게 일을 시킨 뒤 돈을 주지 않고 떼어먹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화물차주들의 원성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차주들 피해액만 수백억원”
19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 하남경찰서는 중견 D화물주선업체 대표 최모씨를 사기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최씨는 A화물중개 플랫폼을 통해 모집한 차주들에게 지난해 10~12월 일을 시킨 뒤 운임을 주지 않고 도피한 혐의를 받는다. 현재까지 80명 이상의 차주가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1인당 120만~2740만원, 총 60억원가량의 운임을 떼였다. 15t 트럭 기준 60만원인 서울~부산 구간을 2~45회 운행해야 올리는 매출이다. 업계 관계자는 “D사에서 운임을 받지 못한 차주가 2000명에 달한다는 소문도 돈다”며 “피해액은 수백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물중개 플랫폼은 모바일이나 웹을 통해 화주와 화물차주를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화주가 직접 차주와 연결되기보다는 중간에 주선사로 불리는 중개업체들이 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러 화주로부터 일감을 모은 주선업체가 견적·화물량·배달지역 등을 포함한 내역을 게시하면 차주들이 ‘콜’을 선택해 배정받는 방식이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약 84%의 개인 화물차주가 플랫폼이나 주선업체에서 일감을 얻는다.
플랫폼에서 잡은 일감은 항상 운임을 떼일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게 차주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장기 계약은 사정이 낫지만, 단건 계약한 영세차주(일명 ‘콜바리’)들은 일만 하고 돈은 못 받는 경우를 흔히 당한다. 화주가 차주에게 직접 운임을 치르는 게 아니라 주선업체에 지급하는데 차주에게 운임을 줘야 할 주선사들이 ‘배달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서다. ○정부, “‘나 몰라라’ 플랫폼도 손볼 것”중개 플랫폼도 이런 문제를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응은 부실하다. A플랫폼을 10여 년간 이용했다는 화물차주 송산 씨(56)는 “미지급 민원을 제기한 뒤 해당 주선업체 물량이 플랫폼에서 사라지기도 했지만 얼마 뒤 보란 듯이 다시 일감을 올리고 영업을 재개해서 놀랐다”고 했다. 수사를 받고 있는 D사는 차주들이 작년 미지급 발생 이후 바로 민원을 제기했는데도 A플랫폼이 제재를 미루면서 사태가 커졌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A플랫폼 관계자는 “미지급 민원이 많을 땐 해당 업체 화물 물량을 제한하고 있다”면서도 “잠재적인 위험까지 제재하긴 어렵다”고 해명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개입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화물중개 플랫폼을 정부가 관리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오는 3월 관련 용역을 발주할 것”이라며 “화물 운임이 미지급되면 플랫폼도 일부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