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와 일본 교토는 옛 모습이 잘 보존된 유명 관광지다. 선조들의 ‘선견지명’ 덕분일까.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책은 2008~2014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부교수를 지낸 로버트 파우저가 썼다. 언어학자인 그는 서울과 대전, 교토, 구마모토, 가고시마, 더블린 등 다양한 도시에서 살았다. 책은 역사적 경관 보존의 원동력을 종교, 국가, 민족주의, 애국주의, 애향심 등에서 찾는다.
신흥 지배 세력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의 역사성을 활용하곤 한다. 로마와 교토가 그런 예다. 기원전 27년, 로마제국 첫 황제로 등극한 아우구스투스는 새로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황폐해진 로마 재건에 나섰다. 즉위 첫해에 로마 안에 있는 약 80개 신전을 복원했다. 이런 일은 반복됐다. 게르만족이 세운 동고트 왕국이 그랬고, 교회의 권위를 높이려던 교황이 그랬다. 그 덕분에 로마는 황폐화될 때마다 항상 재건됐다.
교토도 마찬가지였다. 오다 노부나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통치자에 오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토에 머물며 도시를 재건했다. 도요토미를 무찌르고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수도는 에도(도쿄)로 옮겼지만, 교토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현재 교토를 대표하는 니조성(城)을 지은 것이 도쿠가와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윌리엄스버그는 18세기 미국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역사 경관이 보존된 건 지배 계급의 정통성과는 상관없다. 다른 원동력이 작용했다. 바로 애국심이다. 윌리엄스버그는 특별한 것 없는 시골 마을이었는데 18세기 미국의 모습을 되살려냈다. 산업혁명과 도시화, 이민자 급증으로 미국적인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샌안토니오, 뉴욕, 베를린, 히로시마, 드레스덴 등을 설명하던 책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한국의 경주와 전주, 서울을 다룬다.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도 비슷했다. 전두환 정권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적 경관’을 보여주기 위한 볼거리로 북촌을 주목했다고 한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오랫동안 도시를 생각해 온 저자의 사유가 엿보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