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수익이 나오지 않는 일부 계열사에 대해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IT 업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확산하고 있다. 구글,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도 지난해부터 대대적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영어교육앱 계열사 ‘케이크’에 대한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구조조정 규모는 전체 인력의 50% 이상이다.
네이버가 계열사 인력을 50% 이상 구조조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네이버는 수익이 나오지 않는 사업이나 계열사에 대해 과감히 정리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사업에 인력과 투자를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성장 가능성 안 보이면 정리26만1997명. 지난해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서 해고된 인력 규모다. 2022년(16만4969명)보다 58.8% 증가했다. 올해도 분위기 심상치 않다. 구글, 아마존은 연초부터 추가 감원을 예고했다. 국내 IT 업계도 어수선하다. ‘맏형’ 네이버마저 계열사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가 지난달 영어교육앱 계열사 ‘케이크’에 대한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한 것은 경영난 때문이다. 케이크는 네이버 자회사인 스노우가 주도한 신사업 계열사다. ‘글로벌 1위 언어학습 앱’으로 키우겠다며 2018년 3월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매 분기 ‘적자의 늪’에서 허덕였다. 지난해까지 5년간 영업이익을 낸 적이 한 번도 없다. 네이버는 더 이상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인력 구조조정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사업을 접지는 않되, 최소 인력으로 기존 서비스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네이버는 다른 계열사로 전환 배치하는 식으로 케이크 인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케이크 인력의 50%를 네이버파이낸셜, 스노우, 크림 등 8개 계열사로 이동시켰다.
업계에선 네이버의 계열사 구조조정이 ‘남 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이나 계열사는 언제든 정리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채용 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하반기 공개채용을 진행하지 않았다. 이 회사가 2021년 이후 반기마다 세 자릿수 규모의 공개채용을 실시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상 징후’에 가깝다는 분석이 많다. ○경기 침체에 신기술 경쟁…더 추워지나빅테크 업계는 지난해부터 감원 칼바람에 시달렸다. 지난해 가장 많은 인력을 줄인 글로벌 빅테크는 아마존(2만7000명)이다. 메타는 전체 직원의 20% 이상인 2만1000명을, 엑스(옛 트위터)는 직원의 절반 이상인 3700명을 지난해 해고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도 각각 1만2000명, 1만1000명을 내보냈다.
올해 추가 구조조정도 이어지고 있다. 아마존의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 ‘트위치’는 지난 9일 직원 500명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11일엔 프라임비디오, MGM스튜디오 소속 인력 수백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구글은 이달 중순 광고 영업팀 직원 수백명에 대한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건비를 아껴 AI 기술에 투자하려는 게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와중에 AI를 중심으로 신사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용 절감이 절실해졌다는 설명이다. 사업 및 인력 운용 전략에서 수익성과 효율성을 더 꼼꼼하게 따지는 분위기다.
국내 IT 업계도 마찬가지다. 네이버 ‘케이크’처럼 수익이 나오지 않거나,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지 않은 사업은 ‘손절’하는 분위기다. 카카오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지난해 7월 전체 인력의 30%에 대한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컴투스도 이달 초부터 일부 개발자를 상대로 권고사직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컴투스 자회사 컴투버스가 메타버스 사업을 확장하려다 실패한 뒤 희망퇴직에 나선 데 이어서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0월 비용 절감을 목표로 ‘변화경영위원회’를 출범한 뒤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 중이다.
IT 기업이 인력 확보에 열을 올리던 시대는 끝났다는 분석도 있다. 한 IT 업계 임원은 “개발 인력을 일단 대거 뽑아놓는 ‘그물형 인력 운용’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며 “2~3년 내 시장 호응을 얻지 못한 사업은 투자를 대폭 축소하고 ‘될만한’ 사업만 골라 투자하는 흐름이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