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화 국가산업단지 내 금속 가공업체 B사는 지난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매일 1시간 한국어 강좌를 개설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 생산 규칙 등 제대로 된 작업 지시를 내릴 수 없어서다. B사 관계자는 “외국인을 새로 뽑을 때마다 겪는 일”이라며 “오래 근무해 기술이 쌓이고 한국어도 잘하는 외국인들은 체류 기간이 제한돼 본국으로 되돌려보내야 하니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류 기간을 연장하는 ‘장기근속 특례’와 직업 연수생·유학생의 취업비자 전환 방침을 발표한 지 1년이 넘었지만 표류하고 있다. 여야 갈등과 총선 일정 등이 겹쳐 관련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을 발표한 건 2022년 12월이다.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장기근속 특례 방안이다. 현행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단순 노무 중심의 비전문 취업비자(E9)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는 3년간 근무 후 추가 고용(1년10개월)을 통해 최대 4년10개월간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이후엔 본국으로 돌아가 6개월 이후에 재입국이 가능하다. 장기근속 특례 조치가 시행되면 출국 절차가 생략돼 외국인이 계속 체류하며 근무할 수 있다. 개편안엔 국내 직업전문학교에서 용접, 도장 등을 배우는 전문대학 유학생(D2)이나 직업 연수생(D4-6)을 E9 비자로 전환해줄 수 있는 근거도 담겨 있다.
이런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9월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법안 통과에 진통을 겪고 있다. 의원실 관계자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다른 법안의 시급성을 들어 논의를 거부하고 있다”며 “총선 일정까지 겹쳐 이번 21대 국회 본회의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E9 비자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는 지난해 12만 명, 올해 16만5000명 등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서류 심사에 의존해 채용하는 구조인 데다 인력들의 한국어가 서툴러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숙련 외국인을 확보하는 방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금도 E9 근로자나 유학생이 전문 취업비자(E7)로 갈아탈 수 있는 장치는 마련돼 있다. 그러나 불법체류를 의식한 법무부는 높은 잣대를 요구하며 비자 전환을 거의 허용하지 않고 있다. 특히 2017년 도입된 D4-6 비자의 E7 비자 전환은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