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파주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다. 오늘도 수도권 일대에 눈이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있고 곧 대설주의보로 바뀌더니 오전부터 눈발이 희끗희끗 흩뿌린다. 금세 눈발이 굵어진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방금 피자가게에서 나온 남자의 검은 머리에 눈이 덮인다.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대여섯 명이 교통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다들 말이 없다. 눈 오는 날은 기도하지 않는 종교 같고, 어젯밤 꿈의 속편 같다.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사거리 건너편 시립도서관 건물 뒤편에 서 있는 전나무와 소나무 같은 늘푸른나무들에도 눈이 쌓인다. 흰 눈이 얹힌 상부의 가지들과 대조돼서인지 전나무 하부의 녹색은 어둡고 짙어 보인다. 염화칼슘을 뿌린 도로를 빼고는 어디에나 눈이 쌓이는 중이다. 공중의 눈발이 소음을 다 흡수한 것일까? 사방은 적요하고 도로는 눈 녹은 물로 검게 반들거린다. 창밖에서 지저귀던 새들도 오지 않고,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길고양이도 안 보인다. 고양이들은 어디선가 눈을 피하고 설경을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눈 내리는 날엔 서정주의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라는 시를 찾아 읽고 싶어진다.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 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룽지에 취직했던/ 눈썹만이 역력하던 그 하인 아이/ 보는 것 같군. 보는 것 같군./ 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강사에도 목이 쉬어/ 인제는 작파할까 망설이고 있는 날에/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처음 이 시를 읽을 때 싸락눈 내리는 심상한 풍경이 망막을 때렸다. 왜 이 시가 그토록 강렬했을까? 가끔 풍경은 돌연 의미심장한 계시와 예언으로 비약하기도 한다. 아홉 살 아이는 궁색한 집을 떠나 암무당 집에 허드렛일이나 거드는 일꾼으로 채용된다. 싸락눈 내리는 날 암무당이 앞장서고 징과 징채를 든 아홉 살 아이는 그 뒤를 말없이 따라간다.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룽지에 취직했던”이란 표현이 너스레일지라도 군식구 처지인 아이와 개에게 서열의 차이란 있을 수 없음을 드러낸다. 싸락눈이 소년의 검정 눈썹을 때리는 세상에서 차별은 덧없는 일이다. 소년의 막막한 처지야말로 이 세상에 와서 시나 쓰는 이들의 하염없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건 아닐까?
불현듯 생각하니, 나는 새삼 오랫동안 시인이었구나! 햇수로 50년이다. 반세기 동안 시를 쓰고 더러는 가르치며, 몇 해 간격으로 꾸역꾸역 시집을 묶어냈다. 시는 우연히 찾아왔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소년이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영감도 받지 못한 채 시를 써냈다. 19세 이후 시 1000편을 쓰고 고개를 들었더니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가 내 앞에 당도해 있다. 머리는 세고, 굵은 머리카락은 만지면 부서질 정도로 가늘어졌다.
나는 무슨 보람을 바래 이토록 오래 시를 썼던가? 나는 쓸쓸함과 덧없음을 초기 자본으로 삼고, 가난한 재능을 끌어모아 근근이 시를 썼다. 다들 돈 되는 일에는 솔깃하지만 돈도 명예도 안 되는 시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은 세태에서 염소젖을 먹으며 시를 썼다. 녹색 양말, 헤어진 연인들, 거짓말하는 소년, 짓지 않은 죄에 대한 속죄, 노래하는 물, 날갯죽지를 벗고 죽은 새, 허공에서 울며 소리치는 비, 자정의 그리움, 벼락 맞은 대추나무 따위에 대해서 썼다. 큰 시인은 인류의 예언자시인은 예언자이다. 작은 시인은 제 미래를 예언하고, 조금 더 큰 시인은 부족의 미래를 예언한다. 정말 큰 시인들은 민족을 넘어서 인류의 미래를 예언한다. 새해를 맞아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한 구절 한 구절 뜻을 곱씹으며 읽는다. 레바논산맥과 삼나무들이 품은 신성과 히아신스와 백합과 수선화의 향기로 그득한 이 시집을 읽는 것은 내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국내에도 여러 번역자에 의해 다양한 판본이 나와 있지만, 이번에는 작심하고 영어 원서를 구해서 더듬거리며 읽고 있다. <예언자>는 지브란이 스무 해 넘게 구상하고 마흔 살에 영어로 써서 크노프 출판사에서 냈다. <예언자>가 나온 뒤 “이것은 피에 적신 책이고 상처받은 마음에서 나오는 절규”라는 평가와 찬사가 잇따랐다. <예언자>는 1960년대 미국 청년들에게 번진 반문화의 물결을 타고 성경만큼 널리 읽혔다.
지브란은 본디 지중해를 끼고 있는 레바논에서 태어나 양치기이자 술주정뱅이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12세 때 아버지를 뺀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공립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받는다. 두 해 뒤 레바논으로 돌아와 프랑스어와 모국어로 공부하다가 5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가족의 잇따른 죽음과 맞닥뜨린다. 늘 슬픔과 고통의 피난처이던 누이동생, 형, 어머니가 차례로 병에 쓰러진 것이다. 젊은 시절엔 프랑스 파리에서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말년에 미국 뉴욕 그리니치에서 외부 출입도 하지 않은 채 은둔해서 살다가 1931년 4월,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모래알에서 우주를 보는 상상력시는 무엇일까? 왜 그토록 시에 매달렸을까? 시만 생각하면 심장이 뛰고, 밤을 새워 시를 쓴 뒤엔 날개를 단 기분에 빠지곤 했다. 물론 “시는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시인도 있지만 대개는 생물학적 생존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 “시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고 할 것이다. 젊은 날에 나는 오만하고 수학을 제대로 못 하고 헛된 몽상에나 빠져 살았다. 삶의 균형을 잃은 채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저지르며 기우뚱거리면서도 시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시를 쓰는 것은 평균적 인식과 발상을 깨고 솟아오르는 상상력을 언어로 포획하는 일이다. 시인에게 상상력이란 모래알에서 우주를 보고, 꽃에서 우주의 파동을 느끼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특별해서 시를 쓴 게 아니라 시를 썼기 때문에 보통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았을 테다. 혹시 검고 짙은 눈썹에 달라붙는 싸락눈을 맞으며 징과 징채를 들고 암무당 뒤를 말없이 따르던 소년이 자라서 내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