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 동양제철화학이 모태인 OCI홀딩스가 7703억원을 투입해 한미약품의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사기로 했다. 이어 오리온그룹은 5475억원을 들여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지분 25.73%를 매입하기로 했다. 한미사이언스 대주주들은 상속세 재원 마련 부담을 해소할 수 있게 됐고, 레고켐바이오 대주주는 투자금을 회수하는 동시에 말라가는 연구개발(R&D)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이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인수하는 기업의 전략이다. OCI는 화학·소재, 오리온은 식품에서 각각 일가를 이뤘지만 제약·바이오와는 거리가 있는 기업들이다. 그런데도 나란히 제약·바이오 분야에 진출하려는 것은 새로운 분야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절박감에서다. “석유화학에서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변신한 독일 바이엘의 길을 따라가려 한다”는 이우현 OCI그룹 회장의 설명과 “앞으로 건강이 글로벌 식품시장의 화두로 떠오를 것”이란 허인철 오리온그룹 부회장의 전망이 이를 대변한다.
시장에선 세계적 고령화 추세를 반영해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만약 치료제를 내놓은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는 세계 제약·바이오업종 시가총액 1·2위에 올랐다. 이 두 업체와 함께 글로벌 전 업종 시총 20위 안에는 유나이티드헬스와 존슨앤드존슨까지 모두 4개의 제약·바이오 기업이 들어가 있다.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 연초 라스베이거스 대신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시간대에 열리는 CES보다 ‘바이오 투자 페스티벌’인 JP모간 헬스케어 콘퍼런스가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젠슨 황은 특히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생명공학을 주도하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전통기업의 바이오 도전은 그 자체로 평가할 만하다. 생명공학 분야에 뛰어드는 국내 스타트업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특히 원천기술과 AI를 활용한 바이오 기술 개발은 뒤처져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 기술로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