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 재탄생 이끌 '리파운더' 절실하다

입력 2024-01-16 17:49
수정 2024-01-17 00:34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지난 12일 개시됐다. 그 과정에서 구순의 윤세영 태영 창업주가 “워크아웃을 받아달라”며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윤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기 직전 234%였던 태영건설의 부채비율(연결재무제표 기준)은 작년 말 483%로 급증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장기 차입금은 1조원을 넘어섰고, 부채로 보고되지 않은 관계기업의 PF 지급보증도 2조4000억원에 달했다. 결국 윤 회장은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들에게 회장직을 물려준 지 5년도 되지 않아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창업자나 전임자가 경영에 복귀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은 최고경영자(CEO)로 세 번이나 등판했다. 그런데 슐츠 회장이 스타벅스 제국을 이뤄내는 동안 부채 규모는 총자산(38조원)보다 많은 48조원에 달했다. 현재 스타벅스의 자본은 -10조원이다. 작년 한 해만 해도 매출 47조원에 순이익이 5조3000억원에 이르지만 자본잠식 상태에 처한 것은 자기주식 탓이 크다. 슐츠 회장이 작년 4월 다시 복귀하기 전까지 CEO였던 케빈 존슨은 2018년 9조원, 2019년 13조원 등 막대한 규모의 자기주식을 취득했다. 스타벅스는 2019년부터 자본잠식에 빠졌다. 슐츠 회장이 복귀하면서 자기주식 취득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보면, 후임자의 자기주식 취득에는 동의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듯 창업자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경영을 이뤄낼 ‘리파운더(refounder)’를 찾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한국의 경영 승계는 3세를 넘어 4세까지 왔는데, 과거처럼 오너냐 전문경영인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리파운더냐가 중요하다.

1∼2%대 저성장에 접어든 한국의 경제구조에서 리파운더에 대한 갈급함은 너무나 절실하다. 누구나 인정하는 리파운더로 애플의 팀 쿡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를 꼽을 수 있다. 팀 쿡은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 애플 CEO로서, 당시 140조원이던 매출을 작년 387조원으로 늘렸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44조원에서 148조원으로 급증했다. MS의 사티아 나델라도 2014년 취임 때 113조원이던 매출을 작년 275조원으로 불렸다. 영업이익은 36조원에서 115조원으로 증가했다. 2012년 소니의 최연소 CEO로 취임한 히라이 가즈오도 리파운더로 인정받는다. 그는 91조원의 매출에도 불구하고 15조원의 영업손실을 보던 소니를 퇴임 때 매출 100조원에 영업이익 8조6000억원, 순이익 5조7000억원을 내는 흑자기업으로 전환시켰다.

팀 쿡, 사티아 나델라, 히라이 가즈오, 그리고 한국의 이건희 회장 등이 리파운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창업자와는 또 다른 빅체인지(big change)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이건희 회장의 신(新)경영선언은 ‘국내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격상시켰다. 팀 쿡은 잡스 시절 ‘영감의 애플’을 ‘관리의 애플’로 바꿨다. 사티아 나델라는 취임 후 MS에 없는 클라우드 역량을 과감히 외부에서 채워 넣는 등 ‘기술의 MS’를 ‘비즈니스의 MS’로 전환했다. 그가 취임한 뒤 46조원이던 영업권이 88조원으로 증가했다. 히라이 가즈오는 돈 안 되는 자산을 과감히 매각, ‘외형의 소니’를 ‘콘텐츠의 소니’로 탈바꿈시켰다.

리파운더의 부재는 기업의 존속 가능성만 위협하는 게 아니다. 리파운더를 찾는 데 실패하면 경영 손실로 인해 지배구조가 흔들리고 구성원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리파운더를 육성할 수 있는 사회·경제·법적 구조를 갖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