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대, 법대 등 문과 전공자가 주로 맡았던 대학 총장 자리를 이과 출신 교수가 맡는 대학이 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과학기술이 날로 중요해지면서 관련 지식을 갖춘 리더가 필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교육계에 따르면 주요 10개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총장 중 4명이 이과 출신인 것으로 집계됐다. 경희대와 연세대는 다음달 취임하는 신임 총장을 기준으로 했다.
다음달 임기가 시작되는 윤동섭 연세대 총장은 의대 출신으로 연세의료원장을 지냈다. 연세대 20대 총장이자 이과 출신으로는 일곱 번째 총장이다. 다섯 번째 의대 출신 총장이기도 하다.
지난 10일 제18대 신임 총장으로 선임된 김진상 경희대 총장은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경희대에서 공대 출신 총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취임한 유지범 성균관대 총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으로 성균관대 공과대학 신소재공학부 교수다. 2026년까지 임기가 연장된 박상규 중앙대 총장도 통계학과 출신 교수다. 미국 뉴욕주립대 의과대학에서 생물통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공계 출신 총장의 약진은 대학 역사를 돌아봤을 때 이례적인 현상으로 평가받는다. 주요 10개 대학의 역대 총장은 153명(중복 제외)으로 이 중 이과는 36명(23.5%)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과 총장 비율이 높은 곳은 공대, 의대 전통이 강한 한양대와 연세대뿐이다. 두 학교는 역대 총장의 50%가 이과 출신이다. 다른 주요 대학은 문과 출신 총장 비중이 전통적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특히 법대 등 문과대가 강한 고대는 역대 총장 18명 중 1명만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이화여대도 11명(선교사 제외) 중 1명이 과학교육 전공인 것을 제외하고 인문·사회대 출신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과거 대학 교육은 문리대 중심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련 학교 교수가 주목받았다”며 “문과 출신 교수들이 사회와 대학 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도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학가 분위기는 최근 들어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급격한 도래, 취업 및 각종 프로젝트에서 높아진 이공계 비중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도 변화에 적응하고 혁신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한 공대 교수는 “지금과 같은 사회적 대변혁기에 대처하려면 전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며 “대학에서도 과학기술을 모르면 제대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과학기술 관련 인재를 키우겠다며 반도체 바이오 등 관련 학과 개설을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과학 산업적 전문성이 중요해지면서 이공계 교수가 총장 외에 학내 주요 보직을 맡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에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기술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며 “학교가 필요에 의해 이공계 교수들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