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젠 없어"…웃음꽃 피어나는 日 노인들의 詩

입력 2024-01-14 18:38
수정 2024-01-15 00:34

몸이 불편해 병원을 찾은 일본 노인. 그는 의사로부터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는다. 여든세 살의 마쓰우라 히로시 씨는 집에 돌아와 그런 의사를 향해 “늙은 게 무슨 병명이라도 되냐”고 되묻는 글을 혼자서 써본다. ‘연세가 많으셔서요/ 그게 병명이냐/ 시골 의사여.’

최근 국내 출간된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사진)은 이 같은 일본 노인들의 센류(川柳)를 모은 책이다. 일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가 2001년부터 매년 개최해온 ‘실버 센류’ 공모전 수상작 중 88수를 엄선했다. 센류는 일본의 짧은 정형시 중 하나다. 5-7-5 총 17개 음으로 구성되며 풍자나 익살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본 노인의 센류 모음집이 출간된 건 처음이다.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젠 없어’(야마다 요우·92세) ‘이봐, 할멈/ 입고 있는 팬티/ 내 것일세’(시무타 겐지·60세)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야마모토 류소·73세) 등 노인들의 꾸밈없는 일상이 녹아든 센류를 읽다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공모전 수상작들의 실버 센류 시집 시리즈 누적 판매량이 90만 부에 달하는 이유다.

책은 초고령사회 일본의 풍경도 보여준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요시무라 아키히로·73세)거나 ‘환갑 맞이한/ 아이돌을 보고/ 늙음을 깨닫는다’(네헤이 히로요시·54세)는 모습이 그렇다.

서선행 포레스트북스 편집자는 “몇 년 전 일본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뒤 우리 독자들에게 꼭 소개해보고 싶었다”며 “노인들의 소소한 일상 속 철학과 관조를 통해 나이 들어가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전하는 게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