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된 기분"…비트코인 현물 ETF 금지령에 개미들 '날벼락' [신민경의 테마록]

입력 2024-01-14 07:49
수정 2024-01-14 08:11
"비트코인 생긴 지 15년 됐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문을 걸어잠그고 있네요. 글로벌 시대에 금융 쇄국 정책이라뇨." (코인 커뮤니티 게시글)

목요일인 지난 11일 우리 금융 시장에는 호재와 악재가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가상자산 시장 오랜 숙원이었던 '비트코인 현물 ETF'이 비로소 미국 금융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승인된 가운데, 한국 투자자들은 이 ETF를 살 수 없다는 소식이 알려졌거든요. 우리 당국이 증권사들에게 "일단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중개하지 말라"고 연락을 돌렸다고 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떡이라고 하더라도 그림 속에 있다면 소용이 없죠. 글로벌 대형 호재라고 한들 국내에서 금지됐으니 개미들로선 힘이 쭉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한 문제는 당국의 당부 이후 국내 증권사들이 기존에 해외에 상장돼 있던 선물 ETF의 거래도 속속 중단하고 있단 겁니다. 당국은 "현물만 문제 삼았는데 왜 선물까지 금지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업계는 "당국에 밉보일 필요 없지 않느냐"며 하나둘 거래 중단 카드를 꺼내고 있습니다.우리 금융당국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 법 위배 소지"금융위원회는 지난 11일 저녁 입장자료를 내고 "국내 증권사가 해외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기존의 정부 입장과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금융위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오는 7월 시행되는 등 가상자산에 대한 규율이 마련되고 있고 미국 등 해외사례도 있는 만큼 추가 검토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여기서 '기존의 입장'은 7년도 전에 내놓은 '가상통화 관련 긴급 대책 수립' 자료 속 방침인데요. 비트코인 투자가 광풍 현상을 보이자 2017년 말 정부는 금융기관의?가상통화?보유·매입·담보취득·지분투자?금지 등을 골자로 한 '보수적' 기조의 긴급 대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번 발표는 정부의 공식적인 '유권해석'은 아니지만 사실관계에 대한 입장 자료인 만큼 적어도 업계에는 사실상의 구속력이 있습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선 ETF가 기초자산인 지수를 따라가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은 기초자산으로 금융투자상품, 통화, 농축산 등 일반상품, 신용위험, 기타 등을 인정하고 있는데, 금융당국은 여기에 비트코인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일단 판단한 겁니다.

"왜 이제서야…" 당국 눈치에 증권사들 부랴부랴 중개 중단 이런 당국의 방침은 SEC의 승인이 있은 지 반일이 지난 뒤에야 전달됐지만 업계는 즉각 움직였습니다. 수년 전부터 캐나다·독일 등 해외 상장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을 중개해 온 미래에셋·삼성·신한투자증권 등 증권사 대다수가 거래 중단에 나섰습니다.

일부 증권사들은 기존 선물 ETF의 거래도 막기 시작했습니다. 해외 설정 비트코인 ETF에 대한 부정적인 당국 기조를 확인하면서, 책 잡힐만한 일이 없도록 작은 가능성마저 차단하려 한 것이죠. KB증권은 12일 공지를 띄워 비트코인 선물 ETF 23개의 신규 매수를 모두 막고 매도만 가능하게 조치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 등 다른 증권사 일부도 선물 ETF 거래를 막기로 내부 결정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더블록 등 많은 해외 가상자산 언론들이 이런 국내 증권사들 행보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국내 증권사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입니다. SEC의 승인 시한은 이달 10일(현지시간)으로 익히 알려져 있었던 데다, 승인될 것이란 점도 거의 기정사실이었는데 당국은 왜 방침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냐는 겁니다. 아울러 정책 기조가 확정되지 않았단 이유로 이미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던 현물 ETF의 거래까지 막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증권사 한 ETP 실무 담당자는 "미국 금융당국에서 비트코인 선물 ETF를 승인한 지 2년이 넘었고 이번 현물 ETF 승인도 시장에선 파다한 얘기였다"며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갈 문제라지만 그 사이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현물 ETF 승인 공표 이후 한참 지나서야 공지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비가 부족했단 생각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증권사 한 컴플라이언스실 임원은 "ETF인데 현·선물을 구분해서 규제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 의문이 든다. 물론 기초자산 자체에 가상자산이 섞여있긴 하지만 법상으로 수익증권은 중개 가능한 범위에 드는데 '상장한' 수익증권은 왜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현지 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마친 현선물 상품에까지 중개를 하라 마라 당부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생각된다"고 밝혔습니다.당국 "선물 ETF는 문제없다…대원칙 깨기 어려워 신중해야" '늑장 대응'이나 '과도한 규제' 등 업계의 지적들에 대해 당국도 할 말은 있습니다. 모든 해외 상장 현·선물 ETF를 들여다보기엔 여건상 한계가 있었고, 선물 ETF의 경우는 법상 위배 소지가 없는데도 업계가 스스로 중단해 오히려 당국도 당황스럽다는 겁니다. 또 현물 상품에 대해선 막대한 자금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보니 자본시장에서 폭넓게 상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고지가 늦어진 데 대해 당국 한 관계자는 "선물 ETF는 지수 추종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법상 문제가 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현물 ETF의 경우 직접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삼아야 하는데 비트코인이 기초자산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보니 문제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미국 현물 승인을 계기 삼아 위반 여부를 살펴봤다"며 "물론 수년 전 각 ETF가 해외에 상장될 때 법 위반 소지를 따져보면 좋았겠지만 국내외 설정 ETF 전부를 상장 전 들여다보는 건 한계가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미국의 경우 승인 다음날 상장되다보니, 당국에서 SEC의 내부적인 승인·상장 일정까지 사전에 파악해서 국내 거래 여부까지 검토하기엔 여건상 어려웠다"고 부연했습니다.

다만 현물 ETF 거래를 법 위반이라고 못박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는데요. 그는 "만일 논의 결과 위반이 아니라고 최종 결론을 내릴 경우 법 개정 전 유권해석 등을 통해 거래를 풀어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며 "다만 미국에서 승인됐다고 해서 곧바로 당국의 대원칙을 쉽게 깨트리기 어려운 입장을 고려해 주면 좋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 자금 조달'이 핵심인 자본시장에서 투기적 성격이 강한 비트코인은 오히려 자금 조달은커녕 해외 유출이 우려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당국 또 다른 관계자는 "일단 위법 가능성이 있으니 증권사들에게 중개를 보류해 달라고 했다"며 "위법이라거나, 완전히 거래를 금지하겠다거나 하는 등 결론내린 적은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를 해나갈 예정으로 아직까진 이 문제 관련해 브리핑을 계획하진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이틀간 거래 '팡팡' 터뜨린 美…기다렸던 개미들 "바보 된 기분"한편 '현물 ETF' 해외 직구만 기다렸던 개인 투자자들은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이들은 코인 커뮤니티에 '총선 때 두고 보자. 거래 금지 풀어주는 쪽에 표 몰아주자', '직접 한국에서 비트코인 ETF 발행해서 외국 자본 들일 생각은 못하고 우리 돈 유출될 것만 생각하나…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차려진 밥상도 못 먹네…한국은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당연히 우리도 살 수 있는 줄 알고 SEC 승인만 기다렸는데…바보 된 기분' 등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 SEC도 비트코인을 제도권으로 인정했다기보단 마지못해 승인하지 않았나. 금융당국의 보수적인 기조도 이해 간다', '지금도 코인 거래소 통하면 세금 없이 비트코인을 살 수 있는데 굳이 ETF 사서 매매차익에 대한 양도세 낼 필요가…타격 전혀 없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 과열 진정 먼저' 등 의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11일(현지시간) 상장한 11개사 비트코인 현물 ETF의 데뷔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들 ETF의 총 거래규모가 상장 첫날 46억달러, 둘째날 31억달러로 누적 77억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틀 동안 10조원치나 거래됐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