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중소 건설사들이 청약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 더해 태영건설로 인한 예비 청약자들의 불안감마저 높아졌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지방은 물론 경기도에서도 저조한 성적표를 받는 아파트 단지가 발생하고 있다. 12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8일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 라온하이츠' 일반공급 60가구 모집에서 신청자가 '0명'을 기록했다. 중소 건설사인 만송종합건설이 시공을 맡은 이 아파트는 이달 중 입주가 예정된 후분양 단지다.
충청북도 제천시 신백동 '제천 신백 선광로즈웰'은 209가구를 대상으로 1·2순위 일반공급을 접수했지만, 신청자가 2명에 그쳤다. 이 아파트 시공은 신광건설이 맡았다. 보해토건이 시공하는 부산 사상구 괘법동 '보해 썬시티 리버파크'도 208가구를 모집한 일반분양에서 14명만 참여했고 남광토건이 짓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하우스토리 퍼스트시티' 역시 468가구 모집에 17명만 접수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분양 현장에서는 지역 중소 건설사들이 외면받는 이유 중 하나로 태영건설 사태가 거론된다. 가뜩이나 시장이 침체했는데, 유명 건설사가 자금난을 겪고 워크아웃에 나서는 상황이 빚어지자 예비 청약자들이 중소 건설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모델하우스에 방문한 고객들은 보통 집의 구조나 위치, 분양가 등을 따지는데, 최근에는 시공사가 어떤 곳인지 묻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고는 시공사 이름이 생소하다는 이유로 쳐다보지고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예비 청약자들의 불안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종합건설기업 폐업 공고 건수는 581건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219건 늘었고 2005년 629건 이래 가장 많았다.
특히 전체 폐업의 절반 이상은 중소 건설사에 몰려 있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건물을 다 짓고도 팔리지 않는 악성 미분양이 늘면서 지방 중소 건설사들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준공 후 미분양은 1만465가구였는데, 이 가운데 지방 물량이 80%(8376가구)에 달했다.
한편 태영건설 워크아웃 여파로 금융기관들이 부실채권 관리에 나서면 중소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 환경은 더 악화할 전망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2022년도 건설 외부감사 기업(건설외감기업) 경영실적 및 한계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외부감사를 받은 929개 건설업체 가운데 41.6%가 잠재적 부실기업이었다. 건설 업체 약 40%는 벌어들이는 영업이익보다 이자가 많아 채무 상환이 어려우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쓰러질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더욱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소비자는 중소기업 제품보다는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며 "중소 건설사들이 대형 건설사 아파트에 비해 분양가가 매우 저렴하거나, 발코니 확장이나 가전제품 등 서비스 품목을 늘리는 식으로 강점을 만들어 내세워야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