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밀매 갱단 두목의 탈옥으로 촉발된 에콰도르의 혼란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9일(현지 시각) 에콰도르 공영방송 TC의 생방송 스튜디오에 10여 명의 괴한이 들이닥쳤다. 복면을 쓰고 다이너마이트를 든 이들이 진행자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는 모습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괴한은 "마이크를 연결하라"며 "마피아를 건드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주겠다"고 외쳤고, 손에 든 폭탄을 한 출연자의 상의 앞주머니에 꽂아 넣기도 했다. 자신들을 마피아라고 언급한 이들이 사람들을 위협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15분 동안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긴급 행정명령을 통해 군을 투입했고, 무장 괴한은 현장에 출동한 에콰도르 군과 경찰에 의해 1시간여 만에 모두 체포됐다.
갈라파고스와 안데스산맥으로 알려진 에콰도르는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인 페루와 콜롬비아 사이에 위치해 수십 년 동안 마약 운송 주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남미의 마약 갱단 활동이 늘어나고,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집권했던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이 반미(反美) 행보를 보이며 미국 마약단속국과 협력을 중단하는 등 치안의 고삐가 느슨해지면서 갱단의 위세도 커졌다.
여기에 에콰도르 역대 최악의 범죄자로 불린 갱단 '로스 초네로스'의 두목 아돌프 마시아스가 지난 7일 탈옥하면서 치안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게 됐다. 노보아 대통령은 "에콰도르인들이 평화를 되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면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갱단은 이반 사키셀라 대법원장의 집 앞에서 폭탄 테러를 벌이는 등 전국에서 약 30건의 차량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건들로 경찰 2명을 포함해 최소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9일에만 최소 6곳의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 교도관, 경찰관이 납치됐고, 병원 다섯 곳이 갱단에 의해 장악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코레아 대통령이 갱단에 사실상 문을 열면서 에콰도르의 치안은 빠르게 악화돼 지금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엔 강력한 대선 후보였던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건설운동당 대표가 정치인과 범죄조직의 유착을 끊겠다고 선언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암살 지시 배후에는 탈옥한 마시아스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미 상황을 수습하기에 늦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미 폭력 조직원이 너무 많고, 교도소에도 여러 갱단이 있어 조직력만 강화될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교도소 내 패싸움도 빈번해 AFP는 2021년 이후 수감자 간 충돌로 사망한 사람만 460명 이상이며, 많은 수가 참수되거나 산 채로 불에 탔다고 보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