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반도체 칩을 디자인한 것처럼 신약을 디자인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엔비디아는 이 순간을 위해 10년 넘게 준비해왔습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헬스케어 부문 부사장 킴벌리 파웰의 말이다. 파웰 부사장은 8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산업 투자 행사인 ‘2024 JP모간 헬스케어 콘퍼런스(JPM)’ 발표 무대에 올라 제약·바이오와 빅테크 결합의 시대를 예고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슈퍼컴퓨터의 탄생, 연달아 ‘빅딜’이 나오고 있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치매로 대표되는 중추신경계(CNS) 질환이 올해 JPM의 3대 키워드로 떠올랐다. 엔비디아, 藥 만드는 슈퍼컴 개발엔비디아는 JPM 개막 첫날, 기존에 신약을 개발하고 설계하던 방식에 ‘대전환’이 올 것이라며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날 엔비디아는 미국 대형 제약사 암젠과 손잡고 신약 연구를 위한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파웰 부사장은 “생물학을 디지털화하는 것, 그리고 해당 정보값을 컴퓨터에 입력시키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AI 신약 디자인이 가능해졌다”며 “컴퓨터를 활용한 AI 신약 디자인 산업은 매년 2500억달러(약 330조원)가 투자되는 연구개발(R&D)에 엄청난 확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는 올해 특히 주목해야 할 분야로 AI를 꼽는다. AI 기술을 활용할 경우 신약 개발 전(全) 주기는 기존 10~13년에서 6~7년으로, 1조~2조원가량 소요되던 개발 비용은 6000억원으로 줄어들 수 있다. 연달아 터지는 ADC ‘빅딜’지난해부터 빅파마들의 주요 관심사인 ADC 역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날 존슨앤드존슨이 ADC 전문 기업 엠브렉스바이오파마를 2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하면서다. ADC는 유도미사일처럼 암세포 등 원하는 부위에 약물을 전달하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화이자, 미국 머크(MSD), 애브비 등 대형 제약사가 연달아 ADC 기술을 사들였다.
CNS 질환도 올해 주목해야 할 키워드로 꼽혔다. 이날 크리스토퍼 비에바흐 바이오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허가받은 치매 신약 ‘레켐비’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치매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약이 없었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최대 장터가 열린 만큼 새로운 M&A 소식도 잇달았다. MSD는 이날 소세포폐암 치료제를 개발 중인 하푼테라퓨틱스를 6억8000만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노바티스도 면역 치료제 개발 기업 칼립소바이오텍을 약 2억5000만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JPM에서 천식 신약 개발사인 아이올로스바이오 인수를 공개했다. 인수 금액은 약 10억달러다.
샌프란시스코=김유림 기자/남정민/오현아 기자 you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