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생명인 첨단 기술을 행정기관이 틀어쥐고 조정한다는 게 지금 대한민국 구조와 맞나요.”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에게 이같이 물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를 거쳐 법사위에 회부된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에 대해서다. 이날 법안은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법사위에 계류됐다.
해당 법안은 처벌 수위를 높여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국가핵심기술의 국외 유출을 막겠다는 것이 골자다. 산업기술침해행위 손해 인정액을 현행 3배에서 5배로 상한을 상향하고, 기술 유출자에 대한 벌금형을 15억원 이하에서 65억원 이하로 높이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기업의 자율성은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해외 기업이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합작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 역시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도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됐다. 글로벌 경쟁 과정에서 외국 자본과의 합작이 빈번한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내용이라는 지적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완성차 기업과 합작공장을 짓거나 협력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법 개정이 이뤄지면 외국 기업들이 자칫 국내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꺼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도 “개정안에는 외국 기업들과의 협력을 승인받기 위해 각종 행정 서류를 한국 정부에 제출하라는 내용이 담겼다”며 “합종연횡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우리 기업 입장에서 파트너에게 다양한 행정비용을 강제하는 법안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은 산자위 법안심사소위에서부터 논란이 됐지만 여당이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회재 민주당 의원은 “기술 보호와 외국인 투자 균형점을 찾아줘야 한다”고 반대했으나 당시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 등은 “대통령령을 통해 문제가 되는 점을 해결할 수 있다”며 원안 통과를 주장했다.
법사위에서는 산업부가 기술 보호를 명목으로 기업에 과도한 정보를 요구하고, 국가정보원 등 기존 산업기술 조사 기관과 역할이 충돌하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김영배 의원은 “수사 중인 사안을 산업부에 신고하도록 하는 것은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국가핵심기술 여부 등을 정부가 판단해 관련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권력 남용의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배성수/원종환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