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사들의 지난해 수주 실적이 중국 조선사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4년치 일감을 확보한 한국 조선사들이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선별 수주하는 전략에 따라 중국에 일감이 몰린 여파다.
7일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 발주된 신조선 수요는 4149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18.7% 줄었다. 한국 조선사들은 전년보다 37.7% 감소한 1000만CGT를 수주했다. 중국 조선사들은 같은 기간 4.7% 감소한 2446만CGT를 따냈다. 점유율로 계산하면 한국이 24%, 중국이 59%다.
한국 조선사의 연간 수주 실적은 2020년까지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021년부터 작년까지는 중국에 밀려 3년 연속 2위였다. 중국 조선사가 자국에서 발주된 선박 물량을 싹쓸이한 영향이다. 한국 조선사의 도크가 4년치 일감으로 가득 차면서 글로벌 선사들도 중국 조선소에 맡기는 물량을 늘리고 있다.
한국 조선사들은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의 80%를 따내는 등 ‘선별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전체 선박 발주량이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비싼 배만 골라서 계약하면 실적엔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3사는 올해 선별 수주를 더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중국 조선사들이 이런 상황을 틈타 배 만드는 실력을 끌어올리면 한국 조선사엔 장기적으로 위협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선사들은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 조선사엔 상대적으로 싼 선박을 맡겨왔다. 최근엔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하나둘 따내면서 비싼 배에서도 건조 기술을 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선사들은 건조 비용이 비싸도 믿고 맡길 수 있는 한국 조선사를 먼저 찾곤 했다”며 “최근 3년치 물량을 싹쓸이한 중국 조선사들의 경험이 쌓이면 한국 조선사를 따라잡는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