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의 비만약 확보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기업가치 기준 세계 4위 제약사인 미국 머크(MSD)가 비만치료제 시장에 본격 합류하겠다고 선언했다. 비만약이 심혈관질환, 지방간염 등 다른 복합 만성질환 치료제로도 쓰이면서 시장성이 커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MSD ‘비만 후보물질 확대’ 선언로버트 데이비스 MSD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일 골드만삭스그룹이 주최한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체중 감량과 당뇨병 치료에 효과적인 신약 후보물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MSD는 기존에 보유한 후보물질 중 비만약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신규 물질을 발굴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기술 이전 등을 통해 외부 물질을 확보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는 비만약 분야로 신약 개발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비만약으로 폭넓게 활용되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를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한미약품이 2020년 8월 MSD에 기술수출한 물질이다. 데이비스 CEO는 “에피노페그듀타이드 투자도 계속할 계획이지만 아직 (비만) 신약 잠재력은 찾지 못했다”고 했다. 글로벌 제약사, 비만약 확보 경쟁MSD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를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키트루다의 추정 매출은 35조원이다. 20년 넘게 세계 의약품 매출 1위 자리를 지킨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를 뛰어넘었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조사업체인 이밸류에이트는 올해 노보노디스크의 당뇨약 오젬픽과 비만약 위고비 등 세마글루타이드 성분 제품 매출이 3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치료제가 올해 세계 1위 키트루다의 연매출을 넘어설 것이란 의미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60억달러(약 7조9000억원)이던 비만치료제 시장이 2030년 100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경쟁적으로 비만치료제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해 11월 중국 에코진의 비만약 후보물질 ECC5004를 최대 2조6350억원에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먹는 비만약으로 미국에서 임상 1상 시험을 하고 있다. 스위스 로슈는 지난해 12월 미국 카못테라퓨틱스를 최대 4조원에 인수하면서 비만치료제 시장에 진출했다. 카못테라퓨틱스는 GLP-1 계열 먹는 약과 주사제를 개발하고 있다.
비만약을 보유한 기업도 후속 물질 확보에 나섰다. 당뇨약 마운자로와 같은 성분의 비만약 젭바운드를 허가받은 일라이릴리는 지난해 7월 미국 비만약 개발기업 버사니스바이오를 2조4360억원에 인수했다. 일라이릴리는 체중 감량 효과를 더 높인 후속 신약 리타트루타이드도 개발하고 있다. 국내 기업도 앞다퉈 진출국내 기업도 비만약 확보 전쟁에 뛰어들었다. 유한양행은 지난 5일 인벤티지랩과 비만·당뇨 치료를 위한 장기 지속형 주사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인벤티지랩은 한 달이나 6개월에 한 번 주사를 맞으면 약효를 유지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YH34160을 보유하고 있다. 동물실험 단계로 미국 임상시험을 추진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한국인 맞춤형’ 비만약 에페글레나타이드를 개발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도 미국 자회사 뉴로보파마슈티컬스를 통해 비만치료제 DA-1726을 개발하고 있다. 대원제약은 국내 바이오기업 라파스와 함께 주사제 형태인 위고비를 붙이는 패치제로 개발하고 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