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사에 대한 현장검사에 착수한다. 당국은 일부 판매사가 ELS 판매 실적을 인사 평가에 비중 있게 반영하고, 판매 한도도 증액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른 판매사의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중국 경기 하강 탓에 홍콩 H지수가 2021년 초 12,000대에서 5600대로 반토막 나면서 올해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ELS 판매 잔액 가운데 5조원 가까이가 손실 영향권에 진입한 것으로 추산된다.
판매 확대 유도 정황 확인금융감독원은 8일부터 홍콩 H지수 ELS 주요 판매사 12곳을 순차 현장검사한다고 7일 발표했다. 은행은 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 등 5곳, 증권사는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투자 등 7곳이다. 금감원은 업권별 최대 판매사인 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부터 검사에 들어간다. 검사는 금융사 제재로 이어지는 조치로, 금감원은 불완전판매 등 위법 사항을 확인하면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지난해 11~12월 실시된 홍콩 H지수 ELS 판매사 현장·서면조사에서는 판매 한도 관리 미흡 등 관리 체계 문제점이 발견됐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국민은행은 지수 변동성이 30% 이상이면 ELS 상품 판매 목표금액의 50%만 판매한다는 내부 규정이 있는데, 규정을 80%로 무리하게 바꾸면서 영업우선정책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규정 한도보다 더 많이 판매한 과실이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은행은 또 임직원 핵심성과지표(KPI)를 평가할 때 주가연계신탁(ELT) 등 고위험 상품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점수 비중이 30∼40%로 높아 직원들에게 ELS 판매 확대를 유도한 정황도 파악됐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이 고객 수익률을 KPI에 반영하면서 ELS에서 수익이 나지 않고 유지된 상태인데도 수익이 난 것으로 평가한 부분도 문제로 꼽았다. ELS는 통상 만기가 3년인데, 6개월마다 평가해 수익을 돌려주는 ‘조기 상환’ 구조를 갖고 있다. 조기 상환한 경우와 상환하지 않은 경우를 똑같이 보고 유리한 점수를 줬다는 얘기다.
신탁계약서와 투자자 정보 확인서 등 일부 계약 관련 서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라 10년간 보관해야 하지만 일부 금융사가 보관하지 않은 사례도 발견됐다. 박 부원장보는 “신속하게 불완전판매나 판매 행위에서의 불법 사항을 정리해 배상 기준을 확정할 것”이라고 했다. “90%는 ELS 재투자자”홍콩 H지수 ELS는 기초자산인 홍콩 H지수 급락 여파로 올 상반기 조 단위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11월 기준 H지수 ELS 총판매 잔액은 19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79.8%인 15조4000억원이 올해 만기를 맞는다. 1분기(1~3월) 3조9000억원, 2분기(4~6월) 6조3000억원 등 상반기에만 절반을 웃도는 10조2000억원의 만기가 몰려 있다. 지난 5일 100억원 안팎의 손실이 확정된 데 이어 8일부터 본격적으로 손실이 드러날 전망이다.
금융권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H지수 ELS 가입자의 90%는 재투자자”라며 “고령 투자자라는 이유만으로 은행 등 판매사의 책임만 묻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H지수 ELS 개인 고객 판매 잔액 17조7000억원 중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는 30.5%인 5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ELS와 같은 파생결합증권 투자 경험이 없는 투자자 비중은 3만4000계좌로 8.6%에 그쳤다. 90% 이상은 투자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강현우/김보형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