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마다 강했지만…강진에 흔들린 엔화가치

입력 2024-01-05 18:13
수정 2024-01-06 02:04
지정학적 위기나 대규모 자연재해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대접받으며 가치가 오르던 엔화가 연초 지진 발생 이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5일 오후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가치는 전날보다 1.34엔(0.93%) 떨어진 144.71엔에서 움직였다. 지난 1일 일본 중서부 노토반도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한 이후 나흘 동안 엔화 가치는 달러당 4.6엔(3.3%) 떨어졌다.

과거에는 일본에서 대형 자연재해가 일어나 경기 침체가 예상될 때조차 엔화 가치는 강세를 나타냈다. 달러와 함께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위험 회피 심리가 강해질 때마다 글로벌 투자자금은 엔화에 몰렸다.

1995년 1월 한신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3개월 동안 달러당 엔화 가치는 18.7엔 올랐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2만5000여 명이 사망·실종하고 일본의 경기 침체가 시작됐을 때도 엔화 가치는 7개월간 7.3엔 상승했다. 그해 10월 달러당 엔화 가치는 75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최근 몇 년 동안 엔화 가치는 지정학적 위기와 자연재해에 고전하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두 달 동안 엔화 가치는 13.6엔 급락했다. 코로나19가 확산했을 때도 엔저(低)가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엔화가 안전자산에서 탈락하는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강진으로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해제 시점이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도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꼽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말 시장 전문가 1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일본은행이 1월 기준금리를 올려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할 것으로 전망한 전문가 비율은 19%였다. 3월은 8%, 4월은 61%였다. 지진 이후 1월 금리 인상을 점치는 전문가들은 더 줄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