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CB 발행' 37% 급증…대규모 신주 물량 '주의보'

입력 2024-01-05 16:18
수정 2024-01-05 16:50

지난해 하반기에 상장기업의 전환사채(CB) 발행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가 고공행진하면서 상대적으로 이자 부담이 낮은 메자닌에 수요가 몰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B 발행으로 모은 돈의 약 70%가 일상적인 회사 운영비 또는 빚 상환에 사용된 건 유의해야 할 점이다. 전환청구기간이 시작되는 올 하반기 오버행(대규모 잠재 매도 물량) 부담도 눈여겨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지난해 하반기 CB 발행 36% 급증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 기업이 지난해 하반기에 2조8745억원어치에 달하는 CB를 발행했다. 전년 동기(2조1042억원) 대비 36.6% 늘어난 금액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이 8862억원어치를 발행해 전년 동기 대비 88.1% 늘었고, 코스닥시장에서는 1조9884억원어치가 발행돼 같은 기간 21.8% 증가했다.


CB 발행이 늘어난 건 시장금리가 크게 뛰면서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기업의 수요가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회사채 금리는 AA- 등급이 5%에 육박했고, BBB-는 11%를 넘었다. CB는 이보다 이자율이 훨씬 낮아 발행 기업에 주는 부담이 작다. 지난해 하반기에 발행된 CB를 보면 176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3개의 표면금리가 0%였다.

돈을 대는 유동성 공급자(LP) 입장에서는 CB가 증시의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리스크)을 피하는 한편 추가 수익의 여지도 열어놓는 수단이 된다. 증시가 안 좋으면 채권으로 만기까지 갖고 가 만기보장수익률(YTM)을 누리고, 증시가 좋으면 주식으로 전환해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코스피지수는 2300 이하로 떨어졌다가 금세 2600 이상으로 오르는 등 큰 변동성을 보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자비용을 아끼고자 하는 발행 기업의 니즈(수요)와 리스크를 피하고자 하는 LP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CB 발행이 크게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조달액 70%는 운영자금·채무상환문제는 CB 발행이 너무 많으면 오버행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통상 CB의 전환청구기간 시작일은 발행으로부터 1년 뒤다. CB에서 나온 다량의 신주가 내년 하반기부터 시장에 풀릴 가능성이 있고, 이는 주가를 짓누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CB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채권으로 만기까지 갖고 가더라도 해당 기업의 재무에 부담이 돼 결국 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디에이테크놀로지와 금호전기가 지난해 11~12월 발행한 CB는 YTM이 9%에 달했다.

CB로 조달한 자금의 70%가 운영자금과 채무상환에 사용됐다는 점도 주가 상승 동력을 떨어뜨이는 요인이다. 지난해 4분기에 CB를 발행한 기업이 밝힌 자금조달의 목적을 보면, 원재료 구입비나 직원 인건비 등 운영자금의 비중이 전체 조달금액의 40.0%로 가장 많았고 채무 상환이 29.9%로 뒤를 이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