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가 뭐죠?"…의대 안 간 '수능 최초 만점자' 근황

입력 2024-01-04 16:17
수정 2024-01-04 17:02

"H.O.T.가 뭐죠?"라는 전설적인 어록을 남긴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초 만점자 오승은 씨의 근황이 전해졌다.

오 씨는 지난 3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수능 만점 당시의 일화를 비롯해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밝혔다.

오 씨는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1968년 예비고사부터 국가 주관 대입 시험이 시작된 후 30년 만에 처음 나온 만점자로 당시 화제가 됐다. 그는 '오승은의 수능 노트'라는 제목으로 7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오 씨는 수능 만점을 받은 이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해 3년 6개월 만에 조기 졸업했고,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유학을 떠났다. 2010년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 의대로 옮겨 생명물리학을 공부하는 연구원으로 7년을 지냈다.

현재는 UC샌디에이고에서 테뉴어 트랙을 밟고 있다. 테뉴어는 대학에서 교수의 종신 재직권을 보장해 주는 제도로, 테뉴어 트랙은 조교수로 임용돼 종신교수가 되기 위해 심사받는 과정이다.

이날 MC 유재석이 "'H.O.T.가 뭐죠?'라는 전설의 어록을 남기신 분이 아니냐"고 말하자 오 씨는 "이제는 안다. 한국 K팝의 역사를 쓰신 분들"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맥락이 와전된 버전인 것 같다"며 "H.O.T.가 대단한 분들인 걸 알고 있고 노래방 가면 친구들이 노래 부르는 것도 알고 있지만 잘은 모른다는 거였다"고 해명해 웃음을 안겼다.

오 씨는 수능 만점 이후 의대가 아닌 서울대 물리학과를 택한 이유로 '친구의 편지'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로부터 받은 장문에 편지에는 '너 같이 공부 잘하는 애가 인류 지식의 최전선에서 순수 학문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오 씨는 "편지를 보고 '그런가 보다' 하고는 물리학과를 선택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입학한 서울대 물리학과를 3년 6개월 만에 조기 졸업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오 씨의 어머니는 "의대 애들은 큰 항아리 여섯 개에 든 물을 먹어 치우면 되는데, 넌 지금 태평양에 들어가서 뭘 잡아야 할 줄도 모르면서 자맥질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의대는 6년이라는 정해진 과정이 있지만, 연구는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오 씨 아버지는 "항아리 물 퍼먹는 것보다 자맥질이 재미는 훨씬 더 있다"며 딸을 격려했다. 오 씨는 "지금껏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는 부모님의 지원이 컸다. 잔소리도 안 하고, 그냥 믿어주셨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학 밑천은 오 씨가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내내 직접 정리한 수능 노트인 '오승은의 수능 노트'였다. 인세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오 씨는 "정말 분에 넘치게 많이 받았다. 고등학생 신분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이라고 답했다.

MIT를 졸업하는 데에는 7년이 걸렸다. 유학 생활을 떠올린 그는 "한국에서만 살았으면 자기 잘난 줄만 알고 살았을 텐데 더 넓은 세상을 보니 성장하는 기회였다"며 "수업은 1~2년이면 수업은 다 패스할 수 있다. 처음부터 연구에 몰입하길 원하는 곳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연구실 로테이션을 하다가 두 번째로 간 연구실에서 교수님이 가설을 제안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이었는데 '6개월이면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안 풀려서 7년 걸렸다. 그 가설이 틀렸다는 걸 밝히면서 졸업했다. 좋은 훈련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연구 주제는 '신경세포 활동전위의 라벨 프리 광학적 측정'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UC샌디에이고에서 테뉴어 트랙을 밟고 있다. 오 씨는 "물리를 이렇게 오래 공부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즐겁게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열린 가능성을 놓고 재미있는 연구, 의미 있는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리지널한 연구를 한국인 학자들이 많이 해서 대중들에게 이름이 더 친숙해졌으면 좋겠다. 먼 데 있는 게 아닌데, 과학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