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경쟁사들 치고 나왔네"…美ETF 최강자, 흔들린 이유

입력 2024-01-03 10:06
수정 2024-01-03 10:27


8조달러(약 1경원)어치의 자금이 오가는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해 오던 블랙록의 입지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이 회사가 유럽 등 미국 외 시장에 진출한 사이 뱅가드 등 경쟁사들이 치고 나온 결과다.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장조사업체 모닝스타다이렉트 데이터를 인용해 블랙록의 대표 ETF 상품인 아이셰어즈(iShares)가 미 ETF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말 33.7%에서 2023년 말 32%로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2018년까지만 해도 40%에 육박했던 아이셰어즈의 시장 점유율이 5년 새 7%포인트 넘게 하락한 것이다.

같은 기간 뱅가드의 점유율은 25%에서 29%까지 올랐다. 인베스코 역시 5%에서 6%로 시장 내 지위를 소폭 넓혔다. JP모간체이스, 디멘셔널펀드어드바이저스(DFA) 등 후발 주자들도 최근 몇 년 새 ETF 상품 라인업을 공격적으로 늘린 결과 3%까지 점유율을 높였다. DFA의 경우 2018년까지만 해도 단 한 개의 ETF 상품도 출시하지 않은 상태였다. 두 회사는 기존에 운용하고 있던 뮤추얼 펀드를 ETF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ETF 시장에 침투했다.

“모두를 위한 모든 것”을 표방하며 라인업 다양화에 나선 블랙록과 달리 ‘선택과 집중’을 택한 뱅가드의 운용 전략이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모닝스타다이렉트의 북미 지역 패시브 투자 부문 책임자인 브라이언 아머는 “블랙록의 아이셰어즈가 미국 내 전체 ETF 상품, 더 나아가 S&P500지수와 직접 경쟁하는 가운데 뱅가드는 주식과 채권에만 집중한 ETF 상품을 내놨다”며 “비교적 저렴한 뱅가드의 인덱스 펀드는 ETF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록 측은 최근의 시장 지형 변화와 관련해 “(자사 ETF 상품에는) 2022년 2200억달러(약 228조원)가 유입됐고, 2023년에도 글로벌 리더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전망”이라며 “자산 배분 또는 유동화 수단의 측면에서 아이셰어즈는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그 어떤 경쟁자보다 많은 선택을 받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블랙록은 유럽 시장에서 퍼스트무버(선두 주자)로서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사는 유럽 ETF 시장에서 지난 5년간 44% 수준의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며 프랑스 아문디(12.7%), 독일 DWS(10.1%), 뱅가드(6.6%) 등 경쟁사들을 압도했다. 유럽 ETF 시장은 2018년 말 약 7650억달러에서 지난해 1조7000억달러(약 2225조원)로 규모가 두 배 이상 커지며 시장성을 인정받고 있다.

컨설팅업체 ETFGI의 데비 푸어 설립자는 “세계화, 지역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 블랙록은 유럽 기관투자자들과 두터운 신뢰 관계를 구축했고, 개인보다 기관의 영향력이 큰 유럽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구축했다”며 “미국에서 고객 확보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유럽에서의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