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의 이직, 이력서를 한 곳도 넣지 않았다" [점프의 기술]

입력 2024-01-02 10:42
수정 2024-01-02 10:44
오늘도 전화를 받았다. “후배가 이직 하고 싶어하는데 A랑 B회사중에 어디가 더 좋아?기왕이면 안정적인 곳. 너 시장상황 잘 알잖아.”

“있잖아, 좋은데 안정적인 곳은 없어....”

내게 이직의 조언을 얻는 이유, 소위 말하는 ‘T자형 인재’로 한 직무로 여러 분야에서 일해봤다는 것. 그리고 시장의 상황과 회사의 현황을 볼 수 있는 경계인 투자라는 영역에 몸담고 있다는 것. 내가 하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생경하게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와, 어떻게 투자사로 이직을 했어요? 이런 업계가 있는 줄도 몰랐어” 라며 지인들이 말한다. 두 번째로 놀라는 이유는 내가 회사에 지원하기보다 먼저 이직제안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중생은 절이 싫어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누구보다 일을 즐기던 나에게 옆구리를 찌른 수많은 회사들로 하여금 5번의 이직이 있었다는 점이다.

‘요즘 세상에 그게 뭐 대단하다고?’ 라고 생각하는 프로 이직러도 분명 있을 터. 그럼에도 모든 이직을 오퍼로 간 건 나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라 생각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탈출을 꿈꾸는 그 어떤 이에게 ‘나도 그랬다'고 다독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 역시찌질하고 지난했던 때가 있었다고. 지금 겪는 것 괴롭겠지만 결국 나의 무기가 될 거라고., 똑같이 ‘이직이라는 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에도 없는 영혼 없는 이력서를 붙잡고 앓았더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백마디 말도 좋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다른 이에게 오히려 한 장의 글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 앞으로어리숙했던 과거의 모습을 꺼내볼까 한다.

첫 직장은 홍보대행사였다. 홍보대행사에 입사한 건 우연이었다. 그 전에 스타트업이라는 곳에서 잠시 인턴을 한 적이 있다. 새로운 걸 좋아하는 나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낯익었던 그 시절의 여름 인턴으로,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주도적으로 사는구나'라는 걸 배웠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게 방황하던 내게, 세상의 모든 이벤트와 글과 말을 도맡는 분는 그 회사의 홍보담당자 모습은 빛나보였다. 그래서 그 분이 했던 일은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미래라 생각했고, 2012년 나는 한 홍보대행사에 AE로 취업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홍보의 기초를 배웠다. 사실 마케팅과 홍보의 차이도 모르는 채로 입사했던 회사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정교함을 배웠다. 보도자료를 쓰는 법, 미디어리스트를 작성하고 고객사를 위한 프레임을 만드는 것, PPT의 스토리텔링 빌드업으로 고객사를 설득시키는 전략을 세우는 법까지.

그 중 가장 큰 배움은 ‘센스’였다. 상대방이 형언하지 못하는 느낌을 간파해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 이것은 계약서상 갑과 을 관계에서 을이 가져야할 필연적 실력이다. 홍보대행사는 갑으로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을의 센스가 가득한 곳이었다.

실제 대행사에서의 내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 광고주님의 것이었기에. 주님께서 내일 아침까지 보고서를 내놓으라 하시면 그리 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고 서로가 원하는 결과값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배웠다.

물론, 매일 가늠할 수 없는 내 시간에 전전긍긍했다. 오후 5시에 혹여나 고객사로부터 전화가 올까봐 그 시간만 되면 내내 떨었고, 다음날 기자간담회 준비를 마치고 퇴근하기 직전 고객사로부터 ‘내일 간담회 때 나눠줄 시제품의 뚜껑 컬러가 실제 제품과 다르니, 1000개의 화장품 뚜껑을 갈아끼워달라’는 요청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신년기획에 하나쯤은 훔쳐다 쓸 장밤 12시에도 사무실에 모여 앉아 제안서를 쓰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매일 뜨지 않을 것 같은 해가 떴다. 분기가 갔고 1년이 갔다. 울면서 했던 프로젝트들은 연말에 올해의 프로젝트로 내게 작지만 소중한 상과 상금을 안겼고, 나는 또 지난했던 해를 잊고 다음 해의 문턱을 넘었다. 그렇게 ‘첫 직장에선 최소 3년은 버텨라' 하던 어른들의 말에 이 꽉깨물고 4년을 채우며 중간 리더가 되었다.

버티는 시간동안 배운 것은 약간은 내 시간을 핸들링 할 줄 알게 되었고, 루틴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외생변수를 미리 익혀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셈이다.

꽉찬 4년은 나를 울게도 웃게도 만들었다. 연말에 술에 취해 전화해 ‘대신 마감좀 맡길게요~’라고 전화기 넘어 웃던 광고주도, 눈치껏 해를 넘기며 익히는 루틴과 새로움의 축적은 시간이 지나도 유용하다. 해볼만 한 찍먹은 일단 해봤다. 그러니까 존버는 어떻게든 배움을 가져다 준다. 이직을 위한 아주 중요한 초석이고 밑거름이다.

윈스터 처칠이 말했다. 비관주의자는 어떤 기회 속에서도 어려움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본다고. 나는 비관도 낙관도 아닌 그저 ‘오늘도 무사히'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어린양이었다. 모두들 고민할 겨를 없이 ‘나아진다, 지나간다'를 되내이는 염세적 낙관주의자가 되는 것을 추천한다. 고민없는 낙관이 가져다 주는 기회는, 생각보다 더 달콤하니까.

그리고 4년을 버틴 내게, 드디어 첫 오퍼가 왔다.



정인혜 님은 ‘88 올림픽 봤겠네’의 단골인 88년생으로, IT,스타트업 이야기를 대신 고민하고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삼은지 12년차. 현재 한 투자사에서 제일 투자답지 않은 일을 맡은 그녀는 글보다 말을 선호하지만 기억은 기록이 되기에 가끔 글을 쓰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