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이 달라졌다. ‘돌다리를 두드리지도 않는다’는 평가가 그룹 안팎에서 나올 정도로 신중한 경영을 추구했던 정 회장이 본격적으로 신사업 발굴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 회장은 내년 신년사의 키워드도 ‘성장’으로 내걸었다.
정 회장은 31일 신년 메시지에서 “2024년은 ‘기민하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성장 메커니즘의 확립’이 최우선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미래를 구상한다는 것은 다양한 미래를 보고, 성장의 대안을 폭넓게 고려해서 나온 ‘가능치’를 목표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 계열사별로 처해있는 사업환경과 역량, 자원에 매몰된 통념을 버리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새롭고 다양한 시각으로 비즈니스의 변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신년사에서 정 회장은 성장이란 단어를 12번이나 언급했다. ‘2023년 신년사’를 비롯해 과거에도 성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라는 취지의 당부를 한 적은 있지만 이번만큼 핵심 키워드로 성장을 강조한 적은 없었다.
2007년 35세의 나이로 당시 현대백화점그룹의 회장에 올라 당시 30대 그룹 중 최연소 총수가 됐던 정 회장은 대외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며 상당기간 ‘정중동’의 행보를 보여왔다. 현대백화점은 다른 유통 대기업들과는 달리 대형마트 사업에 참전하지 않았다. 롯데와 신세계가 통합 온라인몰을 강화할 때 현대백화점그룹은 계열사 전문 온라인몰에 집중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정 회장의 뚝심은 ‘더현대 서울’에서 빛을 발했다. 그룹 안팎의 반대 속에서도,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1년 2월 서울 여의도에 개점한 더 현대서울은 2년 9개월만에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백화점 매장 중 최단기간 기록이다.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고객 휴식공간으로 꾸미고 이색적 팝업스토어를 유치하며 기존 백화점과 차별화했다. 물건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체험 공간으로 백화점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것이 젊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인 원동력이었다.
더현대 서울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정 회장은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정 회장만의 경영 색깔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 11월 출범한 지주회사 현대지에프홀딩스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완성한만큼 이제는 사업 확장에 매진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주사 출범 당시 현대백화점그룹은 올해 27조원으로 전망되는 매출을 2030년까지 40조원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정 회장은 “혁신은 사소한 생각의 차이에서 나온다”며 “고객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 혁신을 지속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한편, 현대백화점그룹은 새해 첫 업무일인 오는 2일 그룹 전 계열사 1만 5,000여 임직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시무식을 연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