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와 5인의 MBK '키맨'…한국계 미국 IB맨·김앤장 출신 변호사가 주력

입력 2023-12-29 16:09
수정 2024-01-02 10:02
이 기사는 12월 29일 16:0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i>"웨인은 잭과 내게 한국의 재벌에 관해 얘기했다. 재벌 모델의 핵심은 왕조 승계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장남에게 주요 그룹사의 직접 소유권을 몰아주어 웨인은 주력 회사인 일렉트론과 생명보험의 지배 지분을 확보했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과 주요 미디어의 뒷주머니에 돈을 댔고 그것은 뇌물이 아니라 사업을 위해 부과된 세금이라고 했다.

웨인은 40년 동안 쌓아온 기업 자산과 주주 및 채권자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거였다. 물론 그는 왕자처럼 일방적인 지배력을 행사했고, 법으로 보장되지 않은 자신만의 권력으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 거였다.

웨인이 수감된 구치소에 찾아갔다. 그는 몹시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룹이 무너지는데 동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다. 자신에게 왕좌를 빼앗긴 것에 대한 복수의 일환. 웨인만 없으면 동생이 왕이 되어 그룹을 물려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대홍수를 불러온 것이었다. 웨인은 자신의 처벌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소설 '오퍼링스' 중 일부 발췌</i>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10살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간 그의 원래 전공은 영문학(하버퍼드칼리지)이었다. 2020년 출간된 그의 자전적 소설 '오퍼링스'(Offerings)에는 김 회장의 경험과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소설 주인공 또한 김 회장과 마찬가지로 한국계 미국인이다.

영문학도였던 그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를 나온 뒤 뼛속까지 미국식 자본주의가로 변신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 살로만스미스바니에 이어 세계 3대 사모펀드(PEF) 중 하나인 칼라일그룹을 거친 후 2005년 지금의 MBK파트너스를 세웠다.

김 회장은 글로벌 IB 일원으로 외환위기 당시 한국 외평채 발행에 참여했고, 대기업 구조조정 딜에 참여했다. 이 때부터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점을 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오퍼링스에서 "한국 재벌 모델의 핵심은 왕조 승계"라는 등의 표현을 쓰며 외환위기 시절 형제 간의 다툼으로 한 대기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서술하기도 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이 대목이 한국앤컴퍼니 사태를 연상케한다는 얘기가 나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종 의사결정의 정점 김 회장을 오랜 시간 지켜본 이들은 그를 "자아(ego)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그의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김 회장이 2007년 설립한 MBK장학재단 홈페이지엔 "인생의 시작은 태어난 때가 아니라 나를 인식하고 움직인 그 때부터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그의 인생관을 함축한 표현이다. 김 회장은 후배들에게도 인문학적 사고와 자아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 회장은 과거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MBK파트너스는 단순히 경영·경제 지식에 통달한 이들을 원치 않는다"며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 회장의 확고한 자아가 양날의 검이라는 얘기도 있다. 수많은 투자 승부처에서 모든 책임을 지는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리기도 하지만 독불장군이자 독재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익을 내기 위해서라면 냉혹한 의사결정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김 회장이 만든 문화를 버티지 못해 최고의 대우를 포기하고 MBK파트너스를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MBK파트너스 한국 사무소의 파트너는 김 회장을 포함해 총 9명이다. 이들이 권한과 역할이 나눠 갖고 있지만 결국 정점엔 김 회장이 있다. 모든 최종 의사결정은 김 회장이 한다. IB업계 관계자는 "김 회장이 여전히 투자심의위원회 의장 역할을 맡고 있고, 비토권도 직접 쥐고 있다"면서 "다른 하우스와 비교할 때 그립감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개국공신 부재훈·윤종하김 회장이 오랜 기간 믿고 의지하는 이들이 있다. 2005년 3월 1일 서울 공평동 작은 사무실에서 MBK파트너스의 시작을 함께한 부재훈 부회장과 윤종하 부회장이다. 김 회장은 부 부회장과 윤 부회장과 함께 창업해 첫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하던 시절을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비던 때"라고 회상한다.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부 부회장은 김 회장과 마찬가지로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로만스미스바니, 칼라일그룹을 거쳤다. 김 회장과는 동료 사이이면서 먼 인척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중들에겐 방송인 이혜영 씨의 남편으로 유명하다. 그는 MBK파트너스에선 스페셜시츄에이션펀드를 맡아 이끌고 있다.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미국 자본시장 이해도가 높은 부 부회장과 김 회장 모두 한국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한다"며 "다소 무모하다는 얘기까지 나온 이번 공개매수를 부 부회장이 주도한 이유"라고 말했다.

부 부회장이 김 회장과 비슷한 공격적인 성향을 가졌다면 윤 부회장은 그 반대다. 윤 부회장은 PE업계 전체에서도 온화한 성품으로는 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김 회장과는 하버드 동문이다. MBK파트너스 내외부에서 김 회장에게 직접 전하기 껄끄러운 말은 윤 부회장을 통해 전한다고 한다. 투자 일선에선 다소 물러나있지만 MBK파트너스의 균형을 잡고, 민감한 문제를 조율하는 역할은 여전히 윤 부회장의 몫이다.
MBK의 세대교체는 진행 중김광일 대표는 두 부회장을 뒤에서 받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앤장에서 M&A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김 대표는 "한국을 넘어 글로벌 최고의 운용사를 만드는 데 함께 해달라"는 김 회장의 제안을 받고 MBK파트너스로 적을 옮겼다. 사법연수원을 4등으로 졸업하고도 "서열 문화가 싫다"며 판사 대신 김앤장 변호사를 택한 그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당시엔 황무지와 같던 PEF업계에 뛰어들 정도로 도전적인 성향을 지녔다.

그의 성격은 꼼꼼함과 집요함으로 요약된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회계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누구보다 디테일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MBK파트너스에서 대외활동도 전담하고 있다. 상대방의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허리를 90도로 꺾어 고개를 숙이는 '폴더 인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부 부회장과 윤 부회장, 김 대표가 MBK파트너스의 개국공신이라면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을 차세대 주자는 박태현 파트너와 이진하 파트너다. 박 파트너가 김앤장 변호사로 활약하던 시절 김 회장이 그의 프레젠테이션을 한 번 듣고 반해 바로 그를 영입한 건 유명한 일화다. 2019년 말 맥쿼리PE에 매각한 대성산업가스를 비롯해 주요 포트폴리오인 골프존카운티 등이 대표적인 박 파트너의 딜이다.

컨설턴트 출신인 이 파트너는 금융 딜에 특화된 인재다. 금융 딜에 관심이 많은 김 회장의 의중을 받들어 MBK파트너스의 HK저축은행(현 애큐온저축은행)과 롯데카드 인수를 이끌었다. MBK파트너스에 두 배가 넘는 수익을 안긴 두산공작기계도 이 파트너가 주도한 딜이다.

운용 자산이 34조원에 달하는 지금의 MBK파트너스로 성장하는 데 일조한 인물을 외부에서 꼽는다면 김수이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글로벌 사모투자 대표를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김 대표는 칼라일에서 김 회장과 인연을 처음 맺고, MBK파트너스 초창기부터 자금 조달을 도왔다. 김 대표와 김 회장은 오랜 시간 서로의 투자 철학을 공유하며 깊은 신뢰를 관계를 쌓았다. CCPIB는 10조원 규모를 목표로 조성 중인 MBK파트너스의 6호 펀드에도 출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관/차준호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