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인수하면 골목상권 침해, 카카오가 인수하면 독점이라고 하고 사모펀드(PEF)가 인수하면 장사꾼이라고 한다니까요.”
사석에서 만난 창업 7년차 스타트업 대표의 말이다. 꽁꽁 얼어붙은 스타트업 인수합병(M&A) 시장 분위기에 대한 넋두리였다. 벤처투자 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스타트업 대상 M&A는 45건으로 지난해(94건), 2021년(81건)에 비해 크게 줄었다. ‘벤처 붐’이 본격화하기 이전인 2020년(48건)보다 적은 수치다.
그동안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M&A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M&A는 엑시트(투자금 회수) 창구를 마련해주는 한편 또 다른 창업에 나서게 하는 원동력이 돼 창업 생태계 선순환을 돕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에선 엑시트가 기업공개(IPO)에 극단적으로 치중돼 있었다. 자금 회수 금액을 비율로 따지면 M&A는 2%대에 그친다. 반면 미국은 이 비율이 20%를 웃돈다. 기본적으로 M&A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고, 대기업 인수로 이어질 수 있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투자도 적은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잇따른 입법 규제 움직임은 스타트업 M&A를 가로막는 역풍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플랫폼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지면 규제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업계에선 “성장 한계점을 정해두는데, 누가 덩치를 불리려 하겠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그동안 M&A 생태계를 이끌었던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민족 같은 선배 스타트업을 정조준한 법안이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인 알토스벤처스의 김한준 대표는 “한국에 흘러 들어가는 투자는 결국 정부 돈만 남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정위가 플랫폼 기업의 M&A 심사 기준을 더 까다롭게 고치겠다고 예고한 것도 스타트업 M&A 시장을 더 옥죌 것이란 전망이다.
또 지난해 공정거래법이 개정됐지만, 일반 지주회사 CVC는 여전히 외부자금 출자 한도가 40%로 제한되고 해외 투자 비중도 20%까지만 가져갈 수 있다. 반쪽짜리 규제 완화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CVC가 마음 놓고 활동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M&A 활성화는 요원한 길이다.
해외는 어떨까. 미국은 2021년 빅테크를 겨냥한 반독점 패키지 법안이 의회에서 발의됐지만 올 초 폐기됐다. 유럽연합(EU)이 내놓은 디지털시장법은 규제 대상이 해외 플랫폼이라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한국만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