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주나 손금, 타로를 깊이 믿진 않지만 재밌는 이야기거리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친구를 따라 사주와 손금을 각각 보고 왔다. 사주는 건대입구 ‘사주카페 거리’에서, 손금은 구의에 위치한 한 가게에서 봤다.
하지만 난 이런 말들을 무작정 옳다고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듣고 잊어버리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그저 친구들이 그런 곳에 관심이 많았고, 나도 한두 번쯤은 보면 재밌는 이야기거리가 생길 것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은 타고날 때부터 갖고 온 것인지 사주와 손금에서 모두 “나신교라서 남 말 안 듣는다”는 말을 들었다.
친구는 연애 타로를 봤는데 타로 리더가 초면에 반말을 하고 뭔가 잘 알려주지 않아서 불쾌하게 나왔다. 당시 나도 타로를 배운 상황이라 얼마나 성의 없는 풀이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다시 갈 집을 찾다가 입구에 “될 일은 된다”라고 적힌 사주 가게를 발견했다. 사주풀이 3만원, 상세 풀이는 5만원이었다. 3만원에 인생을 알 수 있다니! 정말 좋은 가성비라고 생각했다. 내가 푯말을 보고 들어왔다고 하자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될 일은 당연히 되죠. 반대로 말하면 안 될 일은 어떻게 해도 안 됩니다.”
사주를 본 게 11월 중순이었는데 글을 쓰고 있는 12월 초에 내가 들었던 사주 풀이 대부분을 잊었다. 나보고 30살 넘어 예술을 하라고 했다는 것 빼고는… (결과물이 구려도 사람들이 잘 봐준다는 말이 꽤나 보장된 성공 같아서 내심 기분은 좋았다.) 듣는 순간은 재밌지만 거기에 매몰되려고 하진 않는다. 정해진대로 사는 건 재미가 없다.
손금을 보고 기억에 남았던 건 ‘사회적 노예’라는 단어였다. 20대 초반에 학생이었으면 상관 없지만 만약 일을 했다면 돈도 조금 받고 노예처럼 일했을 거라고 했다. 부모님을 잘 만나 대학생으로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년운세, 점신, 하루운세 등 이런 ‘운명학’들은 꽤나 우리 가까이에 있다. 내 주변에는 두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점집’에 가서 운세를 듣고 오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복채’도 저렴하지 않고, 생일은 바뀌지 않으니 듣는 말은 비슷한 데도 계속 자기 확인을 받고 온다. 왜 그런 걸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왜 종종 사주를 보러 가는 걸까?
남이 해주는 내 ‘캐해(스스로 자신을 해석한다는 말)’만큼 재밌는 건 없다,는 말이 있다. 풀어 말하면 남들이 나의 성격이나 진로, 외양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만큼 재밌는 이야기가 없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MBTI, 사주풀이, 손금이나 관상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생일이나 성격 테스트 같은 간단한 과정을 거치면 ‘나’를 설명하는 글이 와르르 쏟아진다. 우리는 그걸 읽으며 오 이건 나 맞다, 라거나 내가 이렇게 보이나? 하고 고민하게 된다. 사실 이건 내가 나를 잘 파악하면 굳이 궁금하지 않은 사안들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를 잘 모르고(혹은 알려고 하지 않고) 나를 계속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럼 나를 확신하지 못하고 계속 외부에서 내 정체성의 모양새나 근원을 찾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확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론 사주, 타로 같은 것들이 캐주얼한 문화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점집이나 점성술 등 특정 마니아 층만이 찾고 공부하는 분야였다. 쇼양 ‘알쓸신잡’에서 연인들은 불안정한 사랑이란 감정을 바위나 자물쇠 같은 물체에 입히는 것으로 사랑을 눈으로 확인한다 했다. 요즘 사람들은 자아라는 보이지 않는 물체를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니 사주나 운명론에 기대를 거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물론 단순히 이야기가 재밌어서 보는 것일 수도 있고,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에 일말의 기대를 거는 걸 수도 있다.
사주나 관상은 40세 이전에는 보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다. 아마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미래를 내다보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테다. 나는 만약 사주가 정말 정해져 있는 거라면 가장 발 빠른 진로 상담쯤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정말 참고치 정도로만 보면 좋겠다는 희망과 함께.
황태린 님은 지구종말론의 혼돈 속에서 태어나 자연에게 배우며 자랐다. 역사, 심리, 소설, 인간,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덕질’하던 유년을 지나 지금은 홍보대행사 2년차 막내 직원을 거치는 중이다. 문예창작 전공으로 글로 배운 건 글뿐.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