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시중은행이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해 끌어모은 자금이 올해 들어 18조원 가까이 불어나면서 6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하반기에 유치한 고금리 예·적금 등 수신 만기가 대거 돌아온 데다 정부가 유동성 규제 완화에 나서자 자금 수혈의 필요성이 커지면서다. CD 발행 물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관련 금리가 연동된 대출금리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CD 발행량 18조원 급증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은행이 CD를 통해 조달한 원화 자금 잔액은 모두 62조7075억원으로 1년 전보다 40%(17조8942억원) 증가했다. CD는 은행의 유동성 확보 수단 중 하나로, 정기예금에 양도성을 부여해 단기 무기명 예금증서 형태로 금융시장에서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는 상품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단기간에 정기예금 수준의 이자를 받으면서도 필요할 때 매매해 현금화할 수 있다.
4대 은행 중에선 하나은행의 CD 잔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8%(6조4345억원) 늘어난 22조2038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우리은행과 국민은행도 지난해 3분기보다 각각 200%(9조4888억원), 65.6%(5조2855억원) 불어난 14조2274억원, 13조3425억원을 기록했다. 신한은행의 CD 잔액만 지난 1년간 16조2484억원에서 12조9338억원으로 20.4%(3조3146억원) 줄었다.
은행들이 CD 발행을 급격히 늘린 이유는 작년 하반기에 끌어모은 대규모 수신 자금의 만기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강원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은행들은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고금리 예·적금 상품을 연달아 출시해 자금을 확보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늘어난 금융권 수신 잔액은 96조2504억원에 달한다.
수신 상품 만기가 다가오면서 또다시 대규모 자금을 마련해야 했던 은행들이 CD 발행량을 늘려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정성이 국고채와 사실상 다르지 않고 단기물이라는 점에서 현금화가 쉽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선호하는 편이다. 한 시중은행 자금 담당 임원은 “일반 정기예금보다 발행 요건이 까다롭지만 예금 대비 이자 수준을 조금 더 높여 투자자에게 판매할 수 있어 수신 자금을 끌어오기 유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대출금리 상승 우려도단기적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유동성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가 정상화된 점도 CD 발행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LCR은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금융회사가 정부 지원 없이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을 통해 자체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대응 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현행 95%인 LCR 규제를 적용하고, 분기별로 2.5%포인트씩 상향해 100%로 높일 계획이다. CD는 은행의 정기예금을 담보로 발행해 안정성이 높은 자금 조달원으로 꼽히는 만큼 CD가 많을수록 LCR 개선에 도움이 된다.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의 CD 발행이 몰려 관련 금리가 오르면 CD 금리에 연계된 은행의 대출금리도 상승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은 기업대출과 만기 1년 미만 단기 신용대출 이자율을 산정할 때 발행 만기가 3개월인 CD의 발행 수익률을 금리 지표로 활용한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