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만나는 열대우림 유물…생명력 넘치는 남인도 미술 첫선

입력 2023-12-27 18:51
수정 2023-12-29 16:29


날씨가 다르면 미술도 달라진다. 해가 짧고 추운 나라에서는 어두운 색조의 추상적인 미술이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집안에서 생각할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따뜻하고 햇살 좋은 지역에서는 정교하고 화사한 미술이 탄생한다. 1년 내내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려 먹을 게 풍족하고 생명력이 가득한 땅, 남인도 지역 미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는 2000년 전 남인도 미술을 국내에서 최초로 소개하는 전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지난 11월 호평 속에 폐막한 전시를 바로 가져왔다. 인도·영국·독일·미국 등 18개 기관의 ‘명품’ 97점이 나왔고, 이 중엔 인도 밖으로 처음 나오는 유물도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기획 취지에 대해 “남인도 미술이 국내 관객에게 친숙하진 않지만 전시와 유물 수준이 워낙 높아 색다른 아름다움을 소개할 기회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인 ‘스투파’는 불교에서 부처나 고승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을 뜻한다. 출품작 절반 이상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무렵 스투파 관련 조각이다. 전시장은 짙은 초록색으로 꾸며져 있고, 새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그 덕분에 관람객은 남인도의 열대 우림 속을 거닐며 스투파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남인도의 풍요로운 사회상이 드러나는 유물들도 재미있다.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나무와 대지에 깃든 신) 석상(사진)이 대표적이다. 교역을 통해 로마에서 수입한 포세이돈 상과 페르시아산 순금 뿔잔도 흥미롭다. 전시 후반부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주제로 한 작품이 나와 있다. 기존에 자주 접할 수 있던 북인도 계열 동아시아 불교미술과 다른 활기찬 아름다움과 유쾌함이 있는 작품들이다.


불교 신자라면 더욱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지만, 종교가 달라도 열대우림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어 즐겁게 볼 수 있는 전시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를 믿지 않아도 피라미드의 장엄함을 즐길 수 있는 것과 같다. 전시는 내년 4월 14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