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정치권은 2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사에서 이 대목에 가장 주목했다. 본인 스스로 총선 승리를 위한 “용기 있는 헌신”을 선언한 만큼 중진 의원들에 대한 불출마, 험지 출마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게 첫 번째 관측이다. 두 번째는 총선 이후 한 위원장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관측이다.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면서도 곧바로 ‘미래 권력’으로 부상하는 것은 스스로 자제함으로써 윤석열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당 대표나 총리 등의 자리를 맡으며 대선 행보를 계속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재명·운동권과 싸울 것”한 위원장은 취임사 전반부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운동권 세력 비판에 할애했다. 그는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것을 막는 것이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더욱 폭주하면서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그런 당을 숙주 삼아 수십 년간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며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상식적인 많은 국민을 대신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울 것”이라며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제주에서, 경기에서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79세대’(1970년대생·1990년대 학번)의 대표 주자로 ‘86세대’(1960년대생·1980년대 학번) 청산에 앞장서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윤석열 대 이재명’이 아니라 ‘미래세력 대 과거 운동권 세력’의 구도로 가져가겠다는 전략을 내비친 것으로도 분석된다. 승리 위해 與 변화 촉구한 위원장은 이어 승리를 위해선 국민의힘이 더욱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 대표가 1주일에 서너 번씩 중대범죄로 재판받는 민주당인데도 왜 국민의힘이 압도하지 못하는지 냉정하게 반성하자. 무기력 속에 안주하지 말자”고 했다. 이어 “우리가 운동권 특권정치를 대체할 실력과 자세를 갖춘 사람들이라고 공동체와 동료 시민을 설득할 수 있을 때 (총선 승리는) 실현된다”며 “우리는 미래를 정교하게 준비하기 위해, 나라와 시민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기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은 또 ‘정교하고 박력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며 당의 정책 역량 강화를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인구재앙 대비 △범죄와 재난에서 시민 보호 △서민과 약자 돕기 △과학기술 및 산업혁신 가속화 △자본시장 발전 및 투자자 보호 △넓고 깊은 한·미 공조 △원칙 있는 대북정책 △기후변화 대응 △청년 정책 △어르신 공경 △지역 경제 부양 등을 나열했다.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 어기면 출당”여권 정치인과 현역 의원들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쇄신도 예고했다. 한 위원장은 “정치인이나 진영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이 먼저”라며 “국민의힘보다도 국민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우선 내년 총선 공천 방향과 관련해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기로 약속한 분들만 공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나중에 약속을 어기는 이들은 즉시 출당 등 강력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쇄신으로 생긴 공백은 다양한 인사로 메운다는 계획이다. 한 위원장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선의만 있다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이 되도록 많이 모일 때 (국민의힘은) 강해지고 유능해진다”며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국민께 헌신할 신뢰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분들을 (총선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노경목/설지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