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투자자가 맡긴 예탁금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 비율을 속속 끌어올리는 분위기다. 기존엔 대부분 소수점자리에 그쳤던 예탁금 이용료율을 연 1%대로 상향하는 증권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 거래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넣어두는 돈을 뜻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약 51조8624억원에 달한다. 주요 증권사 예탁금 이용률 인상 잇달아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내달까지 주요 증권사 최소 다섯 곳이 예탁금 이용료율을 올려잡을 계획이다. 삼성증권은 이달 말부터 기존 연 0.4%인 예탁금 이용료율을 연 1%로 올릴 예정이다. 내년 1월부터는 한국투자증권이 기존 연 0.4%를 연 1%로, NH투자증권은 기존 연 0.5%를 연 1%로 상향 조정한다.
메리츠증권도 기존 연 0.6%를 1%로 인상한다. 하나증권은 연 0.35%인 예탁금 이용료율을 내년 1월부터 1.05%로 올릴 예정이다. 각각 인상폭이 기존의 두 배 가량에 달한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까지만해도 신한투자증권(연 1.05%)·KB증권(연 1.03%) 두 곳뿐이었던 예탁금 이용료율 1%대 증권사가 내년 초부터는 10곳 가량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키움증권은 지난 10월에 50만원 이상을 맡긴 이들에게 적용하는 예탁금 이용료율을 연 0.25%에서 1.05%로 올렸다. 지난달엔 기존 예탁금 이용료율이 연 0.25%, 연 0.1%였던 KR투자증권과 상상인증권이 각각 연 1%, 연 1.05%로 인상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달 초부터 예탁금 100만원 이하에는 연 2%, 100만원 초과는 연 0.75%를 적용하고 있다.
이미 연 1% 이상을 지급하는 KB증권도 내년 초부터 이용료율을 올린다. 100만원 이상에 대해 기존 연 1.03%를 1.06%로 올릴 예정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증권사 중엔 인상 예정 수치가 가장 높다. 금감원은 비교공시 강화…'이용료율 경쟁 촉진'금융감독당국도 이같은 움직임을 거들고 있다. 이날 금융감독원은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 비교공시를 내년 1월부터 대폭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투자자마다 자신이 증권사에 맡긴 돈에 따라 얼마만큼의 이용료를 받을 수 있을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 비교 선택을 돕는다는 취지다.
금감원은 증권사별로 각기 달랐던 예탁금 이용료 공시 정보를 공통 세분화해 투자자가 쉽게 비교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예탁금 종류와 금액별로 이용료율을 나눠 표시하게 해 동일한 조건 상에서 가장 유리한 이용료율을 찾게 한다는 설명이다.
기존엔 제공되지 않았던 증권사의 예탁금 운용수익률도 공개한다. 투자자가 맡긴 돈으로 증권사가 얼마만큼의 수익률을 냈고, 이중 얼마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는지 알린다는 의미다.
금감원은 예탁금 이용료 관련 자주하는 질문과 답변(FAQ)도 신설할 예정이다. 이들 정보는 금융투자협회의 예탁금 이용료율 공시시스템을 통해 공개한다. 금투협이 연내 시스템을 구축해 내년 1월 첫째주에 올 4분기 기준 이용료율을 공시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강화된 예탁금 이용료율 공시를 통해 향후 투자자들이 이용료율 세부현황과 추이 등을 보다 명확하고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증권사의 자율적인 예탁금 이용료율 경쟁이 촉진돼 투자자의 선택권도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소수점 이자율은 너무해' vs 'CMA가 있지 않나'증권사와 금감원의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 증권사들의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 영향이다. 증권사는 투자자들의 예탁금을 한국증권금융에 맡겨 운용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수익 중 일부를 투자자에게 지급하는데 이때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돈의 비율이 예탁금 이용료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상위 20개 증권사가 투자자 예탁금으로 올린 수익은 올들어 3분기까지 누적 1조1988억원이었다. 투자자에게 지급된 예탁금 이용료는 2397억원으로 예탁금 수익의 20%에 그쳤다. 금융감독당국과 국회 안팎 등에서 증권사들이 예탁금 이용료를 더 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반면 증권가 일각에선 이같은 예탁금 이자 경쟁 추세가 부담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탁금은 주식 매수 대기자금이다보니 투자자가 언제든 찾아갈 수 있어 증권사마다 경쟁을 통해 높은 이자를 붙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예탁금은 단순 대기자금이기 때문에 이용료율 경쟁이 부담스럽다"며 "증권사는 이자가 연 3% 이상 붙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자 수익을 따진다면 CMA를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