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국에선 무겁고 뻣뻣한 고어텍스 의류를 입고 낮은 뒷동산에 가고 일상생활도 하죠. 실제 필요한 기능보다 굉장한 '오버스펙'입니다. 비싸기도 하고요. 가볍고 쾌적하면서 아웃도어 활동에 적합한 새로운 의류용 소재를 만들면 사람들이 앞다퉈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류용 신소재 개발 기업인 소프엔티의 한설아 대표는 한경 긱스(Geek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프엔티는 스포츠 의류·신발용 소재 브랜드 '비블로텍'을 개발한 회사다. 한 대표는 "미세먼지 같은 유해 요소를 차단하면서도 통기성을 높인 소재 개발에 성공했을 때가 창업 후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며 "의료복 같은 기능복은 물론 다양한 스포츠 의류와 신발 등에 소프엔티의 소재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때 의료복 개발로 창업서울대 의류학 박사인 한 대표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의류기업의 연구개발소장 등으로 근무한 기능복 개발 전문가다. 의류업계 경력만 21년이다. 한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이다. "코로나19 때 의료인들이 주로 입던 의료복 소재가 일반인이 입는 옷의 소재와 크게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이러스 차단이나 향균성이 있는 소재로 새로운 의료복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노소재 전문가인 경북대 바이오섬유소재학과 최진현 교수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와 세균, 미세먼지와 같은 유해 미세입자는 차단하는 동시에 통기성, 흡수성, 투습성 등 쾌적성을 갖춘 의료복 소재가 목표였다. 멤브레인(얇은 막 소재) 자체는 이같은 기능을 높일 수 있지만, 원단과 붙이는 과정에서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게 문제였다.
"통상적으로 기능성 의류 소재는 멤브레인에 원단을 붙이는 과정에서 접착제가 미세 기공을 막기 때문에 공기가 통하지 않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파트너사와 함께 미세 기공을 막지 않는 접착제를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소프엔티가 처음 만든 제품은 의료용 보호복이었다. 한 대표는 "코로나19 때 의료진이 코로나19 병동에 들어가면서 보호복을 입는데, 4시간 이상 입을 수가 없는 게 이슈가 됐습니다. 무겁고 통기가 안됐기 때문에 병동을 나오면서 기절하는 사람도 있었고, 보호복을 벗는 과정에서 코로나에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의료 부직포에 자체 개발한 나노멤브레인을 붙여 바이러스 차단이 되면서도 통기성이 있는 보호복을 만들었습니다."
소프엔티는 의료용 보호복, 수술복, 병원 유니폼 등을 판매하는 브랜드 '애트블로'를 만들어 지난해부터 1200여곳 병원·협단체·바이오 회사에 납품하고 있다. 최근엔 국내 최대 검진센터인 한국의학연구소(KMI)와 검진복 상용화 개발을 위한 업무협악(MOU)도 맺었다. 지난 8월엔 의료용 슈즈 브랜드 블럼피도 선보였다. 항바이러스 기능을 갖춘 기능성 신발이다.
한 대표는 창업 전 오랜 기간 기능성 의류와 소재를 고민해온 결과가 비즈니스로 연결됐다고 했다. "박사 논문을 소방복을 주제로 썼습니다. 소방관 사망사고가 나고 난 후에야 소방복이 개선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죠.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도 특수복 연구개발을 했고요.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통해 협업했던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유해 요소 막으면서도 부드럽고 가벼운 소재"창업 후 의료복 브랜드를 만든 한 대표가 스포츠 의류와 신발 소재 개발을 시작한 건 실생활에서 입는 고어텍스 아웃도어 의류에도 불편한 점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어텍스 소재는 사실 텐트에 쓰면 딱 맞는 소재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비를 아주 심하게 맞는 경우가 많지는 않잖아요. 적당한 수준의 방수 기능에 쾌적성을 갖춘 의류 소재를 만들면 유용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어텍스는 아웃도어 의류와 전투복 등 야외, 레저 활동에서 쓰이는 제품에 주로 사용되는 고기능성 원단이다. 방수, 방풍 기능이 탁월한 게 장점이다.비나 눈이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단점은 공기가 통하지 않아 답답하고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소프엔티가 고어텍스의 단점을 보완하는 스포츠 의류와 신발용 신소재 브랜드 비블로텍을 만든 이유다.
한 대표가 스포츠 의류용으로 소재를 개발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나노멤브레인 자체의 기능은 굉장히 좋았지만, 의류나 신발용 소재로 사용하기 위한 합지가 어려웠다. "접착제를 전부 바르면 멤브레인 기능이 전혀 발현되지가 않고, 그렇다고 듬성듬성 합지를 하면 금방 뜯어져서 제품으로 가치가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러다 새로운 소재에 합지를 했는데 여러 기능이 유지되면서도 제품성을 갖추는 데 성공했어요. 그 때 정말 기뻤습니다."
소프엔티는 이 자체 개발 소재로 글로벌 진출을 모색 중이다. 뉴발란스, 룰루레몬, 휴고보스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과 미팅을 진행했는데 친환경 소재라는 점에 기업들이 주목했다고 했다. "해외 상당수 국가에서는 친환경 소재가 아니면 규제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현재 아웃도어 소재에는 불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규제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고요. 저희는 멤브레인 자체를 친환경으로 개발했고, 접착 방식까지도 친환경으로 하기 때문에 이 영역에 강점이 있습니다."
한 대표는 비블로텍이 일상생활 수준에서 필요한 방수 기능을 갖췄으면서도 부드럽고 통기성이 있다고 자신했다. "비블로텍의 뛰어난 기능과 상품성을 미국과 유럽 시장에 소개해 인정받고 싶습니다. 3년 후엔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소재 기업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