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네이버, 카카오 등 온라인 플랫폼의 독과점 비판에 대해 ‘자율 규제’를 원칙으로 내놨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통령 주변의 언어는 ‘글로벌’과 ‘혁신’이었다. 중소상인을 보호하되 이를 법으로 촘촘히 열거해 사전에 규제하기보다 업계 자율에 맡기면서 동시에 정부가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불과 1년7개월 만에 손바닥 뒤집듯 온라인 플랫폼을 향한 시선이 뒤집혔다. 대통령 주변은 ‘소상공인’ ‘독점’과 같은 내부 지향의 언어로 점점 채워지고 있다. 그 사이 무엇이 바뀌었나. 익명을 요구한 한 온라인 플랫폼 관계자는 “내년 4월로 다가온 총선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난감해했다. 정부가 자율 규제를 강조한 건 유튜브, 아마존 등 ‘빈대’(빅테크)를 잡으려다 ‘집’(토종 플랫폼)까지 태운 유럽의 사례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여반장처럼 쉽게 사라지고 있다.
토종 온라인 플랫폼을 독과점으로 규정하겠다는 발상은 무차별적 규제라는 측면에서도 위험 소지가 크다. 예컨대 독과점 기준 중 ‘매출 3조원 이상’(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 확정되면 야놀자, 컬리 등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에 성장 한계를 씌우는 꼴이다. 컬리는 이제 갓 매출 2조원을 넘겼다. 당근마켓도 임시국회에 올라온 온라인 플랫폼법 기준(월평균 이용자 수 1000만 명 이상)대로라면 독과점 기업이다. 글로벌 벤처투자업계에서 “누가 한국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마트처럼 제조사로부터 상품을 매입해 재고 위험을 감수하는 유통기업인 쿠팡을 플랫폼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논란거리다. 입점업체가 ‘자릿세’라고 부르는 입점 수수료는 상품 중개만 하는 네이버 등에서 쓰이는 용어다. 게다가 쿠팡을 독과점으로 규제하려면 어떤 시장에서의 독과점이냐를 따져야 하는데 국내 소매시장에서 쿠팡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햇반 전쟁’으로 불리는 쿠팡과의 납품 단가 갈등을 겪고 있는 CJ제일제당이 이마트 등과 반(反)쿠팡 연합을 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소매시장을 온라인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내 e커머스 기업에 플랫폼과 독과점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려는 일부 시민단체는 유튜브 등 빅테크의 ‘록인(lock-in)’ 전략을 거론한다. 지배적 사업자가 된 뒤엔 그들이 요금을 마음대로 올려도 손을 쓸 수가 없다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안이 틀렸다. 유튜브를 견제하려면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이 유튜브 못지않은 콘텐츠를 공급할 만큼 성장하도록 지원했어야 한다. 독과점을 막는 유일한 해법은 경쟁 촉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