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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철강기업으로 세계 4위인 일본제철이 미국 근대 산업화의 상징인 US스틸을 149억달러(약 19조원)로 인수한다고 발표한 지난 18일. 자사 역대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인 이번 거래 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치르겠다는 일본제철의 발표에 철강업계와 시장은 술렁였다. 이어 발표 약 10시간 이후 나온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사장의 발언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그가 “다른 좋은 기회가 있다면 (추가 M&A는)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의 해외 투자가 활기를 띠고 있다. 기록적 엔저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현금을 보유한 일본 기업과 투자사들은 저출산으로 위축된 일본 내수시장에서 눈을 돌려 해외에서 인수합병(M&A)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나서고 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계약 체결이 다른 일본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日 기업, 성장 기회 있는 해외 ‘눈독’
양사는 이날 일본제철이 US스틸 지분을 주당 55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16일 종가(39.33달러) 대비 프리미엄은 약 40%다. 인수가 성사되면 일본제철은 지난해 조강 생산량 기준으로 기존 3위인 안스틸그룹을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선다. 일본제철은 최근 해외 사업 확장을 중장기 핵심 성장 전략으로 삼고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에 진출했다. 이번 US스틸 인수를 통해서는 전기차에 쓰이는 고급 철강재 중심으로 성장하는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 들어 일본 금융업계도 해외 진출 확장에 나섰다. 미즈호금융그룹은 미국 투자자문사 그린힐을 5억5000만달러(약 7200억원)에 인수했다. 최근 미쓰비시UFG그룹은 호주 데이터 관리업체 ‘링크 어드미니스트레이션 홀딩스’를 8억달러에 인수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들어 일본 기업이 관련된 M&A 규모는 2001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5.5% 증가했다. 글로벌 M&A 활동이 2조700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대폭 커졌다.
일본 기업은 심각한 저출산을 겪고 있는 자국에서 성장동력이 점점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26명으로 1947년 통계 집계를 시작한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직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로 진출해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투자은행(IB)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부동산 개발업체인 다이와하우스와 세키스이하우스, 스미토모 임업 총 3곳이 미국 주택 건설업체 인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일본 전역의 빈집은 850만 채로, 이는 2038년까지 2000만 채로 늘어날 전망이다.
日 저출산 심각…“주주가치 하락” 우려FT는 20일 일본 도쿄에 본사가 있는 M&A 전문가 3명을 인용해 “다양한 업종의 일본 기업들이 수십억달러 규모의 해외 기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로펌 데이비스 폴크&워드웰의 도쿄 M&A 파트너 켄 르브런은 “일본 기업의 해외 딜이 팬데믹 이후 소강상태였지만 내년 글로벌 기준금리가 하락하면서 부활할 것이라는 징후가 보인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또 다른 M&A 담당자는 “일본 기업들은 이전부터 해외 기업을 인수하려는 욕구가 있었으나 글로벌 거시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 올초 여러 건이 무산됐다”며 “그러나 일본 내 M&A 환경이 변화하며 일본제철의 인수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 내 M&A를 촉진하기 위해 관련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면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새 가이드라인에는 신뢰할 수 있는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거절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경영권을 굳게 지키고 외국 자본의 인수 시도를 선호하지 않던 일본이 정부 주도로 문호를 개방하면서 글로벌 투자사들의 이목도 끌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일본 기업 투자자 사이에서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 M&A를 단행한 일본 기업이 과도한 투자로 신용을 잃거나, 대규모 유상증자 등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일본제철 주가도 US스틸 인수 발표 이후인 19일 2.5% 하락했다.
오카산증권의 수석전략가 마쓰모토 후미오는 “많은 일본 기업이 미국 제조업 시장에서 실패한 전적이 있다”며 “이번 거래도 가격이 높지만 강력한 노조와 낙후된 시설을 감당해야 해 약간 위험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