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몬테크리스토', 의심할 필요 없는 현명한 변주 [리뷰]

입력 2023-12-26 08:45

뮤지컬 '몬테크리스토'가 여섯 번째 시즌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2010년 국내 초연해 10년 넘게 한국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작품은 확 달라진 면면을 자신하며 이번 타이틀에 '올 뉴(ALL NEW)'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베일을 벗은 '몬테크리스토'는 단순한 변화가 아닌 한층 발전한 '진화'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몬테크리스토'는 프랑스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장편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한다. 촉망받는 젊은 선원 에드몬드 단테스가 그의 지위와 약혼녀를 노린 주변 인물들의 음모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악명 높은 감옥에서 세월을 보내던 중 극적으로 탈출해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이름을 바꾼 뒤 복수에 나서지만 끝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복수 대신 용서와 화해, 사랑의 가치를 찾는 파란만장한 여정을 그린다.

이유도 모른 채 14년간 감옥에 갇혀 지냈던 에드몬드는 파리아 신부의 도움으로 언어, 경제, 검술 등의 많은 가르침을 받고 탈출 계획을 세운다. 탈출을 시도하던 중 파리아 신부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는 에드몬드에게 크리스토섬의 보물에 대해 알려주고 그곳의 위치가 적힌 지도를 건넨다. 이후 에드몬드는 보물을 손에 쥐게 되고, 자신이 옥살이하게 된 이유를 모두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복수를 시작한다.

앞선 시즌이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했다면, 리뉴얼한 이번 '몬테크리스토'는 원작 소설에 조금 더 충실해 각각의 캐릭터성을 살리고 '복수'라는 핵심 전개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에드몬드 외에 악역인 몬데고, 빌포트, 당글라스의 서사까지 세밀하게 다루면서 넘버 '펜, 잉크, 종이'가 추가되기도 했다. 이는 복수의 당위성을 더 강하게 부여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지만 초~중반부 전개를 다소 느슨하게 만들기도 해 평가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집중도를 끌어올리는 것은 입체적인 영상 효과, 화려한 무대 장치 등 시각적인 요소다. 에드몬드가 시체 자루에 들어가 바다로 가라앉다가 이내 물 위로 솟아오르며 탈출하는 장면은 생생한 영상이 겹치며 실제 물속을 방불케 했다. 앞선 시즌에서도 호평받은 장면이다.


무대 전체를 사용하는 360도 회전 무대는 스토리를 한층 드라마틱하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스파이럴 형태의 4중 회전 무대는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것인데 각 층이 독립적으로 상승·하강하며 매 장면 웅장함을 안겼다. 보물이 가득한 크리스토섬의 동굴은 해당 무대 장치와 소품, 조명 등이 한데 어우러져 감탄을 불러일으켰고, 에드몬드가 복수를 결심하며 부르는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에서는 회전 무대가 최대치로 상승, 공간 하단부에서 앙상블들이 등장하며 실제 지옥의 입구가 열리는 듯한 효과를 줬다.

'지옥송'이라는 별명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 대표 넘버는 절대 놓쳐선 안 된다. 배신과 증오에 휩싸인 에드몬드의 심경을 표현한 군무, 인물과 역방향으로 회전하는 무대 등 기존 '몬테크리스토'의 감성과 새로운 요소가 적절히 배합된 현명한 변주다.

결말도 바뀌었다. 에드몬드가 복수와 분노의 마음을 내려놓으며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마주한다는 점은 동일하나, 인물 간 관계성이 이전보다 여운을 남기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무조건적인 변화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몬테크리스토' 고유의 강점을 잃지 않으면서 신선한 매력을 얹고자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에드몬드 역은 전원 새롭게 캐스팅됐다. 이규형, 서인국, 고은성, 김성철이 맡는다.


1막 초반 가졌던 의구심은 어느 순간 씻은 듯 사라진다.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극인 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프랭크 와일드혼의 넘버는 이질감 없이 감겼고, 웅장한 무대에 붙은 생동감 넘치는 영상은 한 편의 동화 같은 비주얼을 완성했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객석을 비추는 등대, 실제 바닷물이 들이치는 듯한 무대 바닥까지 완벽하게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몬테크리스토'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

공연은 내년 2월 25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계속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