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역대급 투자 빙하기를 겪으면서도 조금씩 기반을 다져온 만큼, 다가올 ‘바이오붐’에 대비한 선제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도 관련 규제를 풀고 연구개발(R&D)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래 성장산업인 바이오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K바이오·백신 펀드가 이르면 다음달 집행될 예정이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조성 계획을 발표한 지 1년6개월 만이다. 이 펀드는 민간투자금이 채워지지 않아 결성 시기가 여러 차례 미뤄졌다.
한 바이오업체 대표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우량 바이오기업들이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다”며 “비 올 때 우산 역할을 해줘야 하는 만큼 빠른 집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규모도 턱없이 부족하다. 내년부터 집행에 들어가는 1, 2호 펀드 조성액은 각각 1500억원, 1100억원 수준이다. 개발하는 물질에 따라 임상 1상에만 필요한 금액이 100억원에 달하는 만큼 실질적인 혜택을 볼 기업은 몇 군데 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자금을 모으기 쉽지 않은 만큼 바이오에 투자하는 운용사끼리 협업해 투자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바이오의료 분야 벤처캐피털(VC)의 신규 투자는 올 3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8.7% 감소했다.
정부 지원 예산이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부처별로 쪼개져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R&D 지원에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고 나눠먹기식으로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국무총리 직속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가 출범하긴 했지만 제 역할을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11년차 바이오기업 대표는 “수년 전부터 대통령 직속으로 제약 바이오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는데, 올해 겨우 총리 직속으로 하나 생겼다”며 “부처별로 제시하는 국책과제도 겹치는 것이 매우 많은 만큼 근본적인 협업 및 융합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는 사이 K바이오 경쟁력이 중국에도 따라잡힐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셀, 네이처, 사이언스 등 세계 3대 과학저널에 실린 바이오의학 논문 수에서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았다. 지난 10월에는 중국 기업이 개발한 면역관문억제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정부 지원 또한 전폭적이다. 중국 정부는 2015년부터 의약품 규제기관(CFDA) 혁신을 통해 신약 승인 및 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바이오 경제를 육성하겠다며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남정민/안대규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