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은 여당 의원보다 다섯 배 이상 많은 출판기념회를 연 것으로 집계됐다. 24일 기준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었거나 개최 계획을 내놓은 의원은 야당 50명, 여당 9명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 자금 모금을 겸한 출판기념회가 집중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여야의 출판기념회 횟수가 이렇게 차이 나는 건 이례적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야당에 집중된 출판기념회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통상 수천만원 정도를 모금한다. 상임위원회나 지역구 관련 기업 및 공공기관 인사들이 봉투에 일정 금액을 넣어 접수처에 내고, 책을 몇 권 받아가는 식이다. 한 국회 보좌관은 “출판기념회 모금은 도서 판매보다는 결혼식 축의금 접수와 비슷하게 이뤄져 봉투만 내고 책은 가져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나 국토교통위 등 산하 기관이 많은 상임위에선 출판기념회를 통해 1억원까지 모금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에서는 올해 의원 50명이 출판기념회를 했거나 앞두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의원은 9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당 대표 선거를 위해 지난 2월 출판기념회를 연 윤상현 의원과 합당을 통해 합류한 조정훈 의원까지 포함한 것이다. 한 여당 의원 보좌진은 “민주당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출판기념회 개최 보도자료가 나오는데 여당은 조용하다”며 “배경을 놓고 의원 및 보좌진 사이에서 각종 추측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與 의원들 ‘지도부 눈치 보기’?여당 의원들이 말하는 출판기념회가 실종된 첫 번째 이유는 윤재옥 원내대표의 자제령이다. 윤 원내대표는 지난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의원총회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출판기념회를 지양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당무감사와 공천 심사를 앞둔 시점에 조금이라도 책잡힐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나부터 연초부터 준비한 출판기념회를 취소했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힘은 21대 총선 참패로 텃밭에 지역구를 둔 의원 비중이 높아 공천에 더욱 목을 매고 있다는 점도 이유다.
여권 관계자는 “접전지는 최대 5억원의 선거 자금이 필요한데 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라면 아무리 돈을 적게 써도 당선이 가능하다”며 “출판기념회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보다 지도부에 찍히지 말아야겠다고 판단한 의원들이 여당에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위법 소지에 몸 사리기도출판기념회와 관련해 내년 1~2월 사정당국의 수사가 있을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있다. 충청권의 한 민주당 의원은 “야당 의원들만 출판기념회를 열다 보니 검찰 수사가 예정된 게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나도 보좌진과 상의해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당 관계자들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국민의힘 간판으로 서울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예비후보자는 “정호윤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팀장 등 대통령실 출신부터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며 “이들을 놔두고 야당 의원만 기획수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소문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로 출판기념회를 통한 모금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다. 2014년 대법원은 정치인 출판기념회에서 기업과 공공기관이 책값 명목으로 내는 돈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기부행위로 간주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한 기업 대관담당 임원은 “물가 상승으로 출판기념회 ‘인사비’도 올라 기업당 30만원 이상은 내고 와야 한다”며 “총선을 앞두고 여유 있게 책정했던 예산이 동 나 사비로 충당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출판기념회로 걷은 돈을 의원들이 불투명하게 처리하는 점도 문제다. 대부분 의원은 출판기념회로 들어온 돈을 연말 공직자 재산 공개에 포함하지 않는다. 지난해 검찰 압수수색에서 재산 공개 때 신고하지 않은 3억원의 현금이 발견된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 단적인 예다. 노 의원은 이 돈이 2020년 출판기념회를 통해 조성됐다고 밝혔다.
노경목/전범진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