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최대 9조원 가까운 혈세를 투입하는 달빛(대구~광주)철도 건설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사업성이 현저히 떨어져 재정 낭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는 지역 간 통합이라는 정치적 명분에 묻혔다. 총선 포퓰리즘에 여야가 한통속이 돼 국가 재정 운용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토위는 21일 전체회의를 열어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철도 건설 특별법을 의결했다. 특별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연내 본회의를 통과할 전망이다.
특별법의 핵심은 예타를 거치지 않고 해당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 신규 사업은 예타를 거치도록 돼 있다. 일정 수준 이상 경제성이 확보돼야 예타를 면제한다. 예산 낭비와 사업 부실화를 막아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다. 하지만 여야 의원 261명은 특별법을 공동 발의해 이 같은 예타 제도를 무력화했다.
특별법은 당초 복선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경우 사업비가 11조3000억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고속철도는 일반철도로 바뀌었고, ‘복선화’ 문구가 빠졌다. 일반철도와 고속철도의 운행 소요 시간 차이가 2분여밖에 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만약 복선으로 추진되면 사업비는 8조7110억원, 단선인 경우에는 약 6조원이 소요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단선·복선 여부는 수요 조사 등을 거쳐 결정될 예정”이라고 했다.
예타 없이 철도 건설 사업이 추진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 특별법이 재정 운용 원칙을 허무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다른 철도 건설 사업에도 같은 요구가 우후죽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당장 달빛철도와 함께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된 다른 43개 노선 건설 사업은 기본적으로 예타를 거쳐야 한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예타 제도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며 “9개월여 걸리는 신속 예타라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예타는 경제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인구가 적은 지방 도시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할 수 없다”며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 소멸 대응 차원에서 예타 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의원은 법을 만들면 되는 것이고, 그다음 일은 기재부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