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전체적으로 다 오르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주류 판매에서 이익을 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무작정 손가락질만 하시니 씁쓸합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4년째 고깃집을 운영 중인 A씨(39)는 내년 소주 출고가 인하에도 판매 가격을 내리기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재작년 말부터 소주를 6000원에 팔고 있다. A씨는 "소주 출고가와 판매가가 무조건 연동된다고 생각하지만, 인건비 등 대폭 오른 가게 운영비가 가격에 반영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음식값을 올리는 것은 제한적이라 우리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지난달 17일 소주의 과세 비율을 조정하면서 참이슬 등 소주 제품의 출고가가 새해부터 최대 10%가량 인하된다. 이에 따라 주점, 식당의 소주 판매가도 덩달아 내려갈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대다수 업주는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또 다른 식당 주인 B씨(51)는 "하이트진로가 지난달 출고가를 올린 뒤라 내년 하락폭도 그렇게 크지 않다. 현재 참이슬(360mL) 기준 1짝(30병) 도매가도 기존 4만7000원에서 약 10% 오른 상황이라 사실상 조삼모사"라며 "주류 가격을 유지해서 폭리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어느 정도 보전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랜차이즈 주점을 운영 중인 C씨(30)는 "연말 송년회에 맞춰 소주 15짝 등 총 주류 45짝을 대량으로 선주문했다. 평일을 제외하고 올해 남은 '대목' 5~6일에 남은 물량을 모두 소화할 예정"이라며 "만약 해를 넘겨도 도매로 구입한 가격을 감안해 소줏값을 내릴 수 없다. 물량 소진 후에도 가격을 유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포털 사이트 검색,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가격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어 음식 가격은 그대로 두고 주류에서 마진을 남기는 것"이라며 "소주 판매가격이 3000~4000원일 때부터 이런 구조가 외식 업계에 굳어졌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소비자는 시중의 소주 가격을 납득하기 어렵다. 물가 인상폭이 가파른 것은 사실이지만, 소주 출고가가 변동하지 않았던 시기에도 주점과 식당들은 판매가를 올려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이슬 출고가가 동결됐던 2015년 11월부터 2019년 4월까지도 전국 소줏값은 지속해서 상승했다.
직장인 D씨(37)는 "물론 물가 인상 등으로 자영업자가 힘든 상황이라지만, 솔직히 지금까지 출고가와 무관하게 500~1000원씩 술값을 올려온 것은 사실 아니냐"며 "맛과 인테리어보다 주류 가격이 싼 식당과 주점이 친구들 사이에서 더 회자될 정도"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소주 등 주류가 가지고 있는 '가격 경직성'을 지적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인하 요인이 있음에도 소주 가격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반발심이 큰 것과 별개로 소비자는 식당에서 주류 구매를 줄이지 않는다"며 "주류는 일정 수요가 유지되므로 가격 변동폭이 적은 대표적인 품목"이라고 설명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