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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에 강남역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고 달러로 결제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블록체인 업계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일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황된 이야기일 것이다. 카페 사장님들에게는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떨까.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용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의 통화 주권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불과 몇 달 전, 필자가 정책 전문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직접 이야기한 내용이다. 전혀 공감하지 않는 눈치였고, 코인 업계에서 수년 전 자주 언급되던 '암호화폐 결제 사업' 정도로 파악하는 것 같았다. 미디어와 여론의 많은 관심을 받는 가상자산일지라도, 그것이 선진국 대한민국의 통화 주권에 위협이 된다는 것은 허풍에 가깝게 들렸을 것이다.
지난 15일 개최된 '기획재정부·한국은행·금융위원회·국제통화기금(IMF) 공동 콘퍼런스'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유사한 발언을 했다. 이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지급수단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중앙은행의 화폐 등을 구축(驅逐)할 경우'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스테이블코인이 비자(VISA)나 마스터카드(Mastercard)처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기관에 의해 발행된다면, 국가 간 자본이동의 변동성이 커지고 통화 주권에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인의 삶에 스며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달러 가격에 페깅(pegging·고정)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외 지역에서 지폐나 은행 예금보다 편리하고 저렴하게 달러를 취득 및 지급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지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달러는 예로부터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안전자산'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고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활성화되며 달러에 대한 접근성은 좋아졌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전체 시가총액은 현재 1300억 달러 수준이다. 이 중 테더(USDT)의 시가총액만 1000억 달러에 근접한다.
자국 통화가치가 불안정한 브라질이나 터키 등 국가에서는 비트코인과 함께 테더라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금융 인프라 접근성이 낙후된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도 테더, 유에스디코인(USDC)이 지급결제에 사용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8월에 유명 지급결제 업체인 페이팔(PayPal)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인 PYUSD를 출시했다. 싱가포르에서는 9월 유에스디코인 발행사인 써클(Circle)이 싱가포르 통화청(MAS)과 함께 '동남아 슈퍼 앱' 그랩(Grab)에 가상자산 지갑 기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국내에는 가상자산 시장에 원화 거래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현란한 가격등락도 없기에 큰 관심을 받지 못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세계인의 삶에 빠르게 스며들며 각국 중앙은행 화폐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가상자산의 '매스 어돕션(mass adoption·대중이 수용)'의 모습에 근접한다.
국내에서도 가능할까국내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하거나 보유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미국 달러와 가치가 연동되어 있기는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또한 가상자산이기 때문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해외로 보내는 것 또한, 규제 공백의 영역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외국환거래법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빗·고팍스 등 거래소들은 유에스디코인(USDC)을 이전부터 거래 지원해 왔고, 빗썸·코인원은 최근 테더의 거래 지원을 시작했다.
개인 간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거래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테더의 거래량은 빗썸 원화 마켓에서만 하루 3000만~4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바이낸스 등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는 한국인들의 테더 마켓 거래금액을 합산하면 한국인의 테더 거래량은 더 늘어난다.
이런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지 않으리라고 속단할 수 있을까? 음지에서 일어나는 가상자산을 통한 불법적 거래 사례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여러 차례 확인되었지만, 그것이 양지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대형 프랜차이즈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는 지금 당장은 어려울 수 있다. 당국이 행정지도를 통해 기업의 가상자산 거래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 간 물품이나 서비스 거래라면 현재의 인프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 더 나아가 카페나 음식점 등 개인 매장에서도 시도가 불가능하지 않다. 매출 세금계산서와 부가가치세 처리 등 실무적인 과제가 있지만, 정산대행업체가 등장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2013년에는 파리바게뜨 인천시청역점이 비트코인 받은 사례가 있고, 당시 비트코인 결제의 문제점이었던 느린 처리 속도는 10년간의 기술 발전으로 해결책이 여럿 나와 있다. 더 나아가 수수료도 매우 저렴해져서 신용카드 수수료 (0.5~1.5%)보다 훨씬 저렴하게 이용이 가능하다. 또 3~8일이 소요되는 신용카드 정산 기간과 달리 즉시 정산 및 입금이 가능하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름 그대로 가치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거래자 입장에서 곤란할 수 있는 가치변동 부담도 덜 수 있다. 즉,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
무엇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 모두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 차별화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임대료 비싼 홍대나 성수에 전시형 매장을 오픈하고, 거액의 마케팅 예산을 집행하며 고객들의 관심을 끌고자 노력한다. 5200원짜리 커피를 주문하고 4달러를 지갑 앱으로 결제할 수 있다면 고객 경험의 혁명이 될 수 있다. 고객이 원하면 업체는 어떻게든 제공하는 것이 시장 원리다. 한국은행 총재 또한 이런 현실을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 흐름, 막을 수 있을까한국은 터키나 브라질처럼 경제가 불안정하지도 않고, 아프리카처럼 금융 인프라가 낙후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원화 시장은 미국 달러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법정화폐 가상자산 시장이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가입자는 2021년 말에 1500만 명을 돌파했다. 새로운 것과 빠른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아주 매력적인 '돈의 형태'다. 만약 한국 경제에 블랙스완(예외적인 충격) 이벤트가 발생해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미국 달러 환율이 급등세를 보인다면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요는 지금보다 더 매우 증가할 것이다.
국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움직임은 현재는 없어 보인다. 이창용 총재가 '도입 논의를 더 미룰 수 없다'라고 말했지만, 원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출시 계획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이 공백에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한 개인 간 거래가 시작된다면 행정지도를 통해 금지할 수 있을까? 무조건적인 차단과 금지가 아닌 합리적인 제도화와 관리·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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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연구위원이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