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스마트폰 시대, 고성능 MLCC 수요 증가

입력 2024-01-05 08:57
수정 2024-03-13 09:57
[한경ESG] ESG 핫 종목 - 삼성전기



삼성전자의 갤럭시 S24를 시작으로 인공지능(AI) 스마트폰 시대가 개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AI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더 많은 전자부품이 필요해진 것이다. 고성능·고전력·고효율·고신뢰성 등 높은 전자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AI를 구현할 수 없는 시대가 된 셈이다. 미래 전자기술의 핵심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기가 선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온디바이스 AI 수혜

삼성전기는 세계 전자산업 발전의 역사를 함께해온 기업이다. 세계 전자산업이 비약적 발전을 이루면 회사도 덩달아 성장하곤 했다. 회사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삼성전기는 1973년 일본 기술의 도움을 받아 설립했다. 초반에는 오디오와 비디오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그러다 1980년대 컴퓨터 부품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1990년대에는 이동통신부품, 광부품 등 차세대 부품 시대를 대비했다. 2000년대에는 전자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워나갔다. 카메라 모듈도 이때부터 성장 가도에 들어섰다. 2010년대에는 MLCC 사업이 빛을 발하면서 회사가 성장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

2020년대 들어 AI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삼성전기로서는 또 다른 기회가 열린 것이다. AI 컴퓨팅 관련 부품을 비롯해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전자부품 수요가 급증세를 보였다. 2024년 1월에 공개하는 갤럭시 S24는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필 전망이다. 갤럭시 S24는 제품 내 AI를 탑재한 온디바이스 AI 폰이다. 삼성전기의 주요 제품군인 MLCC는 높은 성능을 필요로 하는 AI 폰의 필수 부품이다. MLCC는 회로에 일정한 전류가 흐르도록 조절하고 부품 간 전자파 간섭현상을 방지해 ‘댐’ 역할을 수행하는 부품이다. AI 폰은 기기 내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하고, 전력 소비량도 늘어난다. 1대당 MLCC, 파워인덕터 사용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AI 폰 시대의 수혜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고성능 MLCC는 진입장벽이 높아 일본 무라타·TDK, 한국 삼성전기 등이 생산할 수 있다.

MLCC는 경기둔화 가능성을 선반영하는 소재다. 전자회사들은 경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 재고를 줄이고, 반대로 경기가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면 재고를 늘린다. 재고량을 보면서 향후 업황과 실적을 예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22년 MLCC 회사들은 업황의 급격한 둔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2022년과 2023년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MLCC 수요 감소로 이어진 탓이다.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2025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를 서서히 선반영할 것이란 기대가 많다. 실제 MLCC 재고량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전 세계 MLCC 수요가 2023년 4조1930개에서 2024년 4조 3310개로 바닥을 짚어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증권업계는 올해 이후부터는 다시 성장 가도에 올라설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 침체를 지나 다시 연 7~8%씩 성장하는 속도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온디바이스 AI의 경쟁적 출고는 이 같은 회복세를 뒷받침할 수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통상적으로 MLCC 가격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을 3개월 정도 후행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2024년 1분기부터 MLCC 가격 반등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다양화하는 포트폴리오

MLCC·카메라 모듈·반도체 패키지기판으로 대표되는 삼성전기 주요 제품군은 기술력과 포트폴리오 다양성 측면에서 회사의 매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MLCC 시장에서 기대하는 분야는 전장용(자동차 부품) MLCC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열리는 가운데 자동차는 이제 달리는 전자제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동차의 전자 기능이 고도화할 수록 전장용 MLCC 시장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전장 MLCC 시장은 2023년부터 2028년 연평균 15%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삼성전기는 전장용 MLCC 시장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2022년에는 시장점유율이 4%에 불과해 약 44%인 무라타와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2023년은 10%대에 올라서며 차이를 4배로 줄였다. 올해는 매출 비중을 빠르게 키우며 매출액이 조원 단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광학 솔루션 부문부문의 대표 상품은 카메라 모듈이다.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에 들어간다. 전통적으로는 스마트폰 시장 업황에 영향을 받으며, 카메라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기술 확대에 따라 성장성이 부각되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부진은 삼성전기 주가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줬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중화권 스마트폰 시장의 회복세가 예상된다. 삼성전기 카메라 모듈 매출 약 3분의 1이 중국 지역에서 발생하는 만큼 실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매출 비중은 약 20%지만, 성장 기대를 받는 사업 부문은 패키지 솔루션이다. 반도체 및 전자부품을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회로 연결용 부품이 반도체 패키지기판이다. 패키지기판은 데이터 사용량이 증가할수록 고밀도·고다층화가 필수적이다. 고성능 데이터센터 등에서는 네트워크 패키지기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국내 최초로 서버용 FC-BGA를 양산하기도 했다. FC-BGA는 반도체 칩과 패키지기판을 연결해 전기 및 열적 특성을 강화한 고집적 패키지기판이다. 미세 기술력이 중요하기에 진입장벽이 높은 제품군이다. 박준서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꾸준한 설비투자로 FC-BGA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AI 반도체 시장이 성장하면 서버용 FC-BGA의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SG 투자 관점에서도 매력이 높다. 삼성전기는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월드 지수에 15년 연속 선정됐다. 15년 연속 선정은 국내 기업 중 유일하다. DJSI는 매년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25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ESG 등을 평가하는 지속가능경영 평가지수다. 삼성전기는 폐기물 자원순환, 고효율 설비, 체계적 공급망 관리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주가는 지난해 내내 15만원 전후로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올해도 회복 기대를 쉽게 선반영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최근 금리인하 기대가 커지고, 올해 삼성전기의 실적이 회복할 것으로 전망돼 사 모으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삼성전기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9390억원으로 2023년보다 43%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목표 주가 평균은 17만5000원으로, 15~20%의 상승 여력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경기 민감주인 만큼 목표 주가는 다소 보수적으로 책정됐다.

고윤상 한국경제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