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전 세계에서 연말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지노의 도시’ 한복판에 수십 미터에 이르는 줄이 늘어섰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돈 딸 확률이 높다’고 소문난 카지노도, 인기 가수가 나오는 공연장도 아니었다. 20일 전(11월 29일) 문을 연 ‘신생 뮤지엄’이 이들의 목적지였다. 미술관 이름은 ‘아르떼뮤지엄 라스베이거스’.
사막 위에 지은 ‘인공 도시’에서 ‘영원한 자연’을 테마로 명상의 공간을 만든 주인공은 국내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문기업 디스트릭트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의 ‘100m 폭포’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광판의 ‘파도’로 잘 알려진 이 회사의 1호 미국 상설 전시관이다.
일단 ‘명당자리’에 터를 잡았다. 라스베이거스의 중심인 벨라지오호텔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다.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것이 모여 있는 스트립의 한복판이다. MGM리조트인터내셔널이 올해 문을 연 럭셔리 복합몰인 ‘63라스베이거스’ 내에 3305㎡ 규모로 개장했다. 제작비만 2500만달러, 준비기간은 2년을 들였다. ○한국 ‘몰입형 아트’의 기술 총집합
주말 낮에 찾은 아르떼뮤지엄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의 번쩍이는 불빛을 피해 예술 작품으로 마음을 다스리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깜깜하고 좁은 복도를 지나면 아르떼뮤지엄의 시그니처인 폭포와 파도, 숲과 꽃잎들이 펼쳐진다. 호랑이와 용이 날아다니는가 하면 관람객들이 직접 그린 동물 그림을 화면에 인식시켜 벽면에 투사하는 ‘라이브 스케치북’ 코너도 있다. 제주, 여수, 강릉 등 세 곳의 아르떼뮤지엄에서 선보인 인터랙티브 공간을 미국에서 재현했다.
이어지는 ‘별’의 공간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거울의 방 안에 종이로 만든 물방울 모양의 갓 사이로 시시각각 변하는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본 한 미국인은 옆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영원의 방’이 생각나지 않아?”
아르떼뮤지엄 라스베이거스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배치한 ‘가든’ 공간이다. 사방에 펼쳐진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에드가르 드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에 눈을 빼앗기고, 그 분위기에 딱 맞는 클래식 음악에 귀를 내준다.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관람객들의 손이 부산해진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왔다는 앤드루 테일러는 “클림트의 금 조각이 머리부터 발밑까지 쫙 펼쳐지는 걸 처음 본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고 했다. ○네바다의 사막, 조선의 회화 압권아르떼뮤지엄은 라스베이거스 전시관을 위해 ‘조선의 회화’와 ‘라스베이거스의 빛’ 등 두 작품을 특별 제작했다. 모두에게 익숙한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는 물론 ‘일월오봉도’ 등 조선의 명작으로 화면이 가득 채워졌다.
조선시대 궁중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조선의 회화를 본 서양인들은 “낯설어서 오히려 매력적”이라며 작품 설명을 메모하고 영상에 담았다. 텍사스에서 왔다는 로버트슨 가족은 “일본 회화보다 색이 단순한 대신 움직임이 다양하고 선이 강렬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피날레는 라스베이거스 주변에 넓게 펼쳐진 네바다주 붉은 사막과 협곡. 디스트릭트는 이 작품을 위해 라스베이거스 주변과 도심을 샅샅이 뒤져 10분짜리 영상에 담았다.
경이로운 사막의 협곡과 네바다주의 강렬한 태양, 파란 하늘 등 자연으로 시작한 영상은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카지노 불빛, 네온사인으로 마무리된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룰렛과 슬롯머신, 시끄럽게 떨어지는 동전 등 라스베이거스의 상징들이 한 공간에 담겼다.
이제 문을 연 지 20일밖에 안 됐지만 하루 방문자 수가 1000명이 넘는다. 1572명이 평가한 구글 평점은 5점 만점에 5점. ‘상상을 초월한 빛의 향연’, ‘50달러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전시’ 등 호평 일색이다. 니콜 브라운 아르떼뮤지엄 라스베이거스 홍보담당자는 “수시로 방문하고 싶은 미술관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이를 위해 매달 콘텐츠를 새롭게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세 곳(제주, 여수, 강릉)과 해외 두 곳(라스베이거스, 중국 청두)에 문을 연 아르떼뮤지엄은 두바이 등 세계 20개 도시에도 전시관을 세울 계획이다.
라스베이거스=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