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도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에 큰 틀의 합의를 하고 오늘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정부안(656조9000억원)에서 4조2000억원을 감액하고, 증액 등 세부 조정을 거치면 총지출 규모는 정부 원안과 비슷한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이미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긴 상황에서 뒤늦게나마 이렇게 합의한 것은 다행이지만, 그간 숱하게 지적돼 온 고질적 구태가 변한 게 없는 점은 유감이다.
예산안 늑장 처리 악습을 부른 심사 기간 부족부터 고쳐지지 않았다. 정부 예산안은 9월 정기국회 시작 전 국회에 제출되지만 국정감사 등에 밀려 11월이 돼야 심사를 시작한다. 정책 질의 등 절차를 거치면 법정 시한까지 2주 남짓이다. 수백조원 예산안을 심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예산안 자동 본회의 부의제도를 도입했음에도 두 차례만 빼고 법정 기한을 넘겼다. 그러다 보니 부실·졸속 심사가 되풀이되고, 올해도 법적 근거가 없는 ‘소(小)소위’를 꾸려 밀실 심사 관행을 이어왔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져 적기 집행이 어려워지면 경제 운용에 차질이 빚어지는 만큼 밀린 숙제하듯 벼락치기 하는 관행 개선이 시급하다.
예산안이 흥정 대상이 된 고질병도 여전했다. 물론 어느 한쪽 주장만 관철하기 어려운 만큼 주고받기가 불가피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명분이 뒷받침되지 않고 여야가 서로 원하는 것을 적당히 맞바꾸는 식은 야합에 불과하다. 증액 예산은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줄곧 주장한 것이다. 새만금 관련 예산을 3000억원 증액하기로 하고 지역상품권 예산을 3000억원 반영하기로 한 것은 총선 표를 의식한 합작이다.
새만금은 공항 항만 등 막대한 예산 투입에 대한 적정성 의문 때문에 정부가 대폭 삭감했는데도 여당은 뒤로 물러섰다. 선심성과 지역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대표적 ‘이재명표 예산’인 지역상품권은 발행 주체가 엄연하게 지방자치단체여야 하는데도, 거대 야당이 밀어붙였고 중심을 잡아야 할 여당이 동조한 것은 이 역시 나라 살림보다 표에 흔들린 결과다. 이 정도로 야합하려고 그 난리를 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