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한파가 매섭다. 포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영하권으로 떨어지면서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건강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우리 몸의 근육, 혈관 등이 수축하고 경직되기 때문이다. 고혈압을 오랫동안 앓아온 환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고혈압은 세계적인 질환 유병률 1위 질환이자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인 심장질환의 가장 강력한 위험 인자기도 하다.뇌혈관질환 절반은 고혈압이 원인고혈압은 혈관 노화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성인병이다. 성인 기준 수축기 혈압이 140㎜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90㎜Hg 이상일 때를 말한다. 흡연, 과음, 과식, 운동 부족과 같은 나쁜 생활습관이 있는 사람에게 더 일찍, 더 심하게 발생한다.
고혈압은 무증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통, 호흡곤란, 가슴 통증 등의 증상이 있다면 고혈압 자체 증상보다는 고혈압에 의한 합병증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증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방치하면 무서운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동맥을 딱딱하게 만들어 동맥경화증을 유발한다. 동맥경화증은 각종 뇌혈관 질환이나 심장 질환의 원인이 된다. 뇌혈관 질환의 절반은 고혈압 때문에 발생하고 심장병의 30~35%도 고혈압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 문제가 생기는 혈관 위치에 따라 만성신부전, 대동맥질환, 안저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신부전의 10~15%도 고혈압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겨울철에는 고혈압의 위험이 커진다. 기온이 떨어지면 열 손실을 막기 위해 혈관이 수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고혈압 환자가 병원을 가장 많이 찾은 시기도 12월이다. 지난해 12월 367만 명이 고혈압 진료를 받았다.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 역시 증가한다.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등 고혈압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은 10월부터 늘기 시작해 12월부터 이듬해 2월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면역력 저하·연말모임도 조심해야겨울철에는 생활습관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연말연시 모임으로 술자리가 잦아지기 때문이다. 술과 나트륨 함유량이 높은 안주를 섭취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혈압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전두수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고혈압 환자는 가급적 금주해야 한다”며 “하루 두세 잔 이상을 습관적으로 마시면 혈압이 상승하고, 심근경색증·뇌졸중·심부전·부정맥 등을 부추긴다”고 했다. 이어 “반대로 음주하던 사람이 금주를 하면 수축기 혈압은 3~4㎜Hg, 이완기 혈압은 2㎜Hg 정도 떨어진다”며 “이 경우 심혈관질환 발생은 6%, 뇌졸중 발생은 15%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뚝 떨어진 온도에 야외 활동량이 줄면서 면역력도 약해질 수 있다. 고혈압으로 동맥경화증이 있는 환자는 감기도 조심해야 한다. 감기에 걸리면 혈관에 혈전 발생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동맥경화증 지병이 있는 노인에서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사망률이 높았던 이유다. 외출 후 손씻기를 생활화하고 폐렴·인플루엔자 예방접종도 받아야 한다.올바른 생활습관이 근본 치료법겨울철에는 혈압을 올리는 나쁜 생활습관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전 교수는 “고혈압을 잘 관리하면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체 마비, 치매, 심부전에 의한 호흡곤란 등도 예방할 수 있다”며 “심근경색은 15~20%, 심부전은 50%까지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고혈압의 예방과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혈압 측정이다. 정기적으로 본인의 혈압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좋다. 혈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운동, 자세, 식사, 온도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올바른 측정법을 익혀야 한다. 혈압을 측정할 때는 최소 30분 전부터 흡연, 커피, 식사, 운동을 금하고 3분 이상 안정을 취한 상태로 의자에 바르게 앉아 팔을 책상 위에 놓고 심장 높이에서 측정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가장 편한 상태에서 아침 식전과 취침 전에 각각 2분 간격으로 2번 측정하고, 한 번 측정하기 시작하면 7일 연속으로 측정하는 것이 좋다. 이런 측정 방법이 상황에 따른 혈압 변화를 최소로 할 수 있다.
금연, 금주, 체중조절, 식사요법, 스트레스 관리, 규칙적인 운동 등과 같은 생활습관 개선이 고혈압의 근본 치료법이다. 전 교수는 “고혈압 경계 전후에 있는 경우에는 올바른 생활습관 병행만으로도 치료할 수 있다”며 “혈압을 높일 수 있는 흡연과 음주는 삼가고, 국물 음식을 피하고 여러 반찬을 고루 섭취하는 식습관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깅, 수영 등 유산소 운동을 하루 30분씩 1주일에 다섯 번 이상 하는 것도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