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반독점' 소송·벌금 오간 끝에…일루미나 결국 "그레일 팔아요"

입력 2023-12-18 14:17
수정 2023-12-18 14:55


미국의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일루미나가 결국 자회사 그레일을 다시 시장에 내놨다. 미국 유럽 경쟁당국과 반독점법 위반 등을 놓고 부딪힌 지 2년 만이다.

일루미나는 그레일을 매각(divest)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17일(현지시간) 회사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내년 2분기까지 제3자 매각을 하거나, 독립 회사로 분사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날 제이콥 타이슨 일루미나 최고경영자(CEO)는 “그레일의 기술이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신속한 매각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일루미나가 그레일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부터 그레일에 눈독을 들이던 일루미나는 결국 2021년 8월 액체생검 기업 그레일을 80억달러(약 9조원)를 들여 전액 출자 자회사로 두게 됐다고 발표했다. 당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유럽연합(EU)의 반독점 관련 규제 검토가 아직 진행 중이었지만 일루미나는 사업 시너지를 고려해 일단 인수합병을 밀어붙였다.

일루미나는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파는 회사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70~80%에 달하며 세계 연구소, 대학, 기업 등에서 유전자 분석을 진행할 때도 주로 일루미나 장비가 쓰이곤 한다. 2016년 설립된 그레일은 피로 암을 조기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FTC는 일루미나가 그레일을 인수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내용의 반독점 소송을 연방법원에 제기했다. 당시 FTC는 일루미나가 그레일을 인수하면 미국 다중암조기검사(MCED) 시장의 혁신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에는 EU 법원이 EU 집행위원회(EC)가 유럽 매출이 하나도 없는 미국기업일지라도 반독점 심사권을 가질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놨다. 올 7월 EC는 결국 일루미나와 그레일에 각각 4억3200만유로(약 6121억2000만원), 1000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해당 벌금은 지금까지 EC가 지금까지 부과한 합병규정 위반 벌금 중 가장 큰 규모로 알려졌다.

‘결정타’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나온 일루미나와 FTC 간의 소송 결과다. 연방 항소법원은 2년 전 이뤄졌던 일루미나의 그레일 인수가 ‘반(反)경쟁적’이라고 판결했다. 일루미나는 법정싸움을 더이상 이어가지 않고 그레일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