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떻게 피하나"…'갑툭튀' 男에 800만원 퍼준 보험사 [아차車]

입력 2023-12-18 10:37
수정 2023-12-18 10:54

한 운전자가 1차로로 달리던 중 2차로에서 차 사이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보험사 측에서는 운전자의 과실이 더 크다고 판단했고, 운전자는 보행자에 합의금 800만원을 지급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지난 17일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한문철 TV'에는 '운전자 잘못 없는데 보험사는 돈은 왜 퍼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답답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제보자이자 운전자인 A씨에 따르면 사고는 지난 7월 5일 오전 10시 32분께 전주 완산구의 한 도로에서 발생했다. 당시 A씨는 좌회전하기 위해 1차로로 주행 중이었다.


이때, 2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 사이에서 갑자기 한 남성이 걸어 나왔고, A씨는 이 남성을 피할 겨를 없이 그대로 추돌했다. 영상에는 보행자가 중앙분리봉을 넘어가기 위해 무단횡단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사고 이후 보험사 측은 A씨의 과실이 65%라고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A씨는 차에 치인 남성에게 치료비 등 명목으로 8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공개한 보험사 직원과의 녹취록을 보면, A씨가 "피할 수 없었던 무단횡단 사고"라며 "과실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자, 직원이 "대법원 판례에 나와 있는 걸 근거로 해서 과실 비율을 정했다"고 말한 내용이 담겼다.

A씨가 "제가 운전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고 부주의했다는 말이냐"고 묻자 직원은 "그렇다"며 "억울하면 민사소송을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법원 판결을 보면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가 차에 치여 사고가 날 경우 운전자가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달 16일 대구지법 형사6단독 문채영 판사는 대구의 한 도로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 신호에 따라 정지 후 출발했다가, 무단횡단을 하다 넘어진 80대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업무상 전방주시 의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9월 울산지법 형사항소 1-1부 심현욱 부장판사도 경남의 한 왕복 6차선 도로를 운전하다가 육교가 있는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80대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운전자는 통상 예견되는 사태에 대비해 회피할 수 있는 정도의 주의의무를 다하면 충분하다"며 "이례적인 사태까지 예견해서 대비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했다.

한문철 변호사도 "판례에 근거해서 과실 비율을 정했다고 하는데, 그런 판례는 없다"며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차 사이에서 툭 튀어나온 건 없었다"고 지적했다.

A씨의 과실 비율이 높다고 판단한 보험사를 향해서는 "무슨 소송을 하라는 거냐. A씨의 돈이 나갔다면 부당 이득 반환 청구를 하면 되겠지만, 보험사에서 준 돈을 반납하라는 소송은 없다"며 "보험사에서 소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는 보험료 할증이 늘어난다. 보험사를 잘못 만난 거라 어쩔 수 없다"며 "보험사가 치료비뿐만 아니라 합의금까지 줬다면 소송을 못 한다. 보험사에서 왜 이렇게 돈을 퍼 주는지 모르겠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편 무단횡단은 지정된 신호를 무시하거나 횡단보도 혹은 건널목을 이용하지 않고 도로를 횡단해 차량의 주행을 방해하는 행위다. 무단횡단 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적발될 경우 통상 2만~3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신호가 있는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했을 경우 3만원, 지하도나 육교가 있는 곳에서 이를 이용하지 않고 횡단 시 2만원, 그 외 보행자 횡단 금지 구역에서의 횡단 시 2만원을 내야 한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