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설정, 여기에 큰 사랑을 받은 원작, 어느 것 하나 부담이 안가는 부분이 없었지만 배우 표예진은 야무지게 해냈다.
지난 14일 종영한 ENA 수목드라마 '낮에 뜨는 달'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살해당한 뒤 시간이 멈춰버린 남자와 전생의 기억을 잃고 한없이 흘러가 버린 여자의 위험하고 애틋한 환생 로맨스를 담은 작품이다. 드라마로 제작되기 전부터 수많은 가상 캐스팅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
표예진은 가야 대장군의 딸 한리타와 3년 연속 무사망자라는 출동 기록을 가진 '기적의 소방관' 강영화, 1인 2역을 맡았다. 앞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원작의 인기를 알고 있다"며 "원작 팬인 동생이 '어떻게 언니가 리타를 연기하냐'고 말했다"면서 부담감을 갖고 작품에 있다고 밝힌 표예진은 "동생이 '생각보다 언니가 잘해줘서, 다 챙겨봤다'고 하더라"라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리타는 도하(김영대 분)에 의해 가야가 멸망하고, 가족이 몰살당한 뒤 복수를 꿈꾸는 인물. 하지만 도하에게 계속 끌리고, 사랑하는 자신을 혐오하며 고뇌하는 캐릭터다. 반면 영화는 당당하고 거침이 없는 인물이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완수하는 강인하고 주체적인 캐릭터라는 점에서 리타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표예진은 "제가 책임져야 할 게 많은 작품이었고, 해내야 할 것들도 많았다"며 "액션도, 감정도, 제가 이 작품에 기여하는 바가 컸기에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끈질기게 임했던 시간을 전했다. 실제로 극 중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소방구조대원 설정을 위해 표예진은 구조대원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고, 경례할 때 손가락 각도까지 맞췄다는 후문이다.
특히 표예진이 집중한 부분은 '감정'이었다. 표예진은 "가족을 죽이려 하는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전생의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현재에 벌어지는 일들이 상상이 안 갔다"며 "대본을 받은 순간부터 생각을 놓지 못한 거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두 캐릭터 모두 굉장히 강렬하고, 강한데 자기가 생각하는 걸 끝까지 끌고 가는 용기가 대단한 거 같다"며 "리타는 자신이 지키기로 마음먹은 걸 끝까지 지키고, 영화는 자기 잘못이 아닌 일에도 인생을 걸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한 거 같다. 그런 부분을 연기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전했다.
전작인 SBS '모범택시'를 비롯해 'VIP', KBS 2TV '쌈, 마이웨이' 등 이전까지 작품들에서 표예진은 막내였다. 특히 'VIP'를 함께한 장나라는 '낮에 뜨는 달' 첫 방송이 끝난 후 표예진에게 "고생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챙겨준다고.
하지만 '낮에 뜨는 달'에서는 현장에서 이끌어가는 입장이 된 표예진은 "매일 현장에 있다 보니 제가 주변을 챙기게 됐다"며 "저의 태도나 이런 것들로 인해 분위기가 형성되는 게 느껴져서 잘 지내려 노력했지만, 제 역할이 너무 어렵고 여유가 부족해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의지했다"면서 전했다.
함께 극을 이끌어 나간 김영대에게도 고마움을 드러냈다. 김영대가 연기한 도하는 사랑했던 리타에게 죽임을 당한 후 그의 지박령이 돼 환생할 때마다 그를 따라다닌다는 설정이었고, 한준오의 몸에 빙의된 후, 강영화를 매니저로 고용하면서 항상 붙어 다녔다.
표예진은 "(김영대가) 장난기가 많은데 의외로 힘든 촬영을 할 땐 전혀 흔들림 없이 묵묵하게 임한다"며 "그래서 의지가 되고, 영대가 잘 버티니 저도 버티게 됐다"고 말했다.
체력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쉽지 않은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방송 내내 턱선이 점점 더 드러나는 게 보일 정도였다. 표예진은 "촬영하면서 4~5kg 정도 빠졌다"며 "나중에는 의상팀 팀장님이 허리 사이즈를 줄였다며 걱정하셨는데,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된 거 같다"며 웃었다. 이어 "원래 촬영장에서는 챙겨 먹기도 힘들고, 여유가 없어지다 보니 얇아지게 되는 거 같다"면서 "촬영 내내 아프지 않고 스케줄을 끝냈다"며 몸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강조했다.
'낮에 뜨는 달' 촬영을 마무리한 후 표예진은 곧바로 차기작인 티빙 오리지널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 촬영에 들어갔다. 쉼 없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지만 "행복하다"는 표예진이었다. 그러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전생에 '좋은 일을 했나', '살인은 안 한 거 같다'는 생각은 한다"면서 웃었다.
"'낮에 뜨는 달'이 찍은 것에 비해 빨리 끝난 느낌이에요. 저에겐 정말 혼신의 힘을 다 한 작품이었고, 그만큼 애정도 깊고, 잘하고 싶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자신이 대견해요. 오래오래 간직하며 꺼내 보고, 제 자신에게 자신감이 될 거 같은 작품이에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