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경제관료 명맥 끊긴 巨野

입력 2023-12-17 18:37
수정 2023-12-18 02:00
정통 경제관료는 과거 보수·진보 진영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의 영입 대상 1순위였다. 장·차관 같은 고위직 출신이면 몸값이 더 높았다. 풍부한 경제지식과 정책 수립 경험은 집권당이 됐을 때 활용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민생을 챙긴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보내는 목적도 있었다. 여야를 불문하고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경제관료 출신이 역대 국회에 포진했던 이유다.

21대 국회에는 정통 경제관료 출신의 씨가 말랐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맹성규·정일영 의원 정도가 경제관료로 일한 경험이 있지만 모두 국토부 출신으로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재부 출신은 한 명도 없다.

과거 홍재형 강봉균(이상 부총리)·정덕구(산업부 장관)·안병엽(정보통신부 장관) 의원 등 걸출한 경제관료들이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활약한 것과 대비된다.

민주당에서 경제관료를 배제하는 기류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강해졌다. 긴급 재난지원금 살포 등 확장재정 방침에 기재부 등 경제관료들이 소극적으로 임하면서다. 김상조·장하성·김수현 전 정책실장 등 좌파 경제학자 출신과 운동권 출신 ‘어공’(임명직 공무원)이 청와대 정책라인을 장악하다시피 하며 무리한 정책을 주도했다. 한 관료는 “당시 김동연 부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하려고 하자 장하성 정책실장이 ‘나에게 보고하라’고 했을 정도로 경제관료에 대한 불신이 컸다”고 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경제관료에 대한 불신을 꾸준히 드러내 왔다. 이 대표는 건전재정을 강조하며 나랏돈을 잘 풀지 않으려는 기재부를 향해 “대한민국이 기재부 나라냐”고 비난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경제관료를 ‘정책 기술자’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지만 관료만큼 절제되고 검증된 정책을 오랜 기간 공부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며 “경제관료들의 합리적 목소리가 듣기 불편하니 등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